아직은 어두운 새벽, 버스 안은 다른 때보다 고요했다. 이미 뉴스를 통해, 사진을 통해 무수히 보아온 태안의 검은 풍경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잠을 청해보았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온통 세상이 검다.
▲ 의항갯벌의 모습
▲ 방제복 입는 중
▲ 방제작업에 대한 설명듣기
밝아진 세상, 우리는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계목항에 도착했다. 분주하게 방제복과 장화를 챙겨입었다. 전에 봉사를 하던 사람들이 벗어놓은 방제복과 장화를 다시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 번 쓰고 버려진다면 이 또한 엄청난 쓰레기 아닌가.
녹색연합 외에도 여러 곳에서 도움을 주고자 찾아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방제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간단한 설문조사를 한 뒤에 갯벌 위로 올랐다.
▲ 기름으로 덮인 갯벌
▲ 물에 고인 기름
▲ 기름으로 덮인 자갈
오일펜스와 자갈, 흙, 물 위 할 것 없이 온통 기름냄새다. 헌 옷이 담긴 자루를 들고 그 갯벌 위에 서니 답답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쏟아지는 햇살은 분명 푸른 바다를 빛나게 했을 텐데, 오늘의 햇살은 검은 기름으로 덮인 돌 들을 빛내고 있다. 이를 악 다물고 걸레질을 기름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오일펜스에 회색빛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아무 말 없이 기름을 닦아내고 있었다. 더 좋은 방법도, 더 편리한 방법도 없다. 우리 몸을 움직여 닦아내는 수 밖에.
▲오일펜스 닦기
▲자갈도 열심히 닦기
▲함께 으쌰!
기름냄새에 어지럽다. 속도 메스껍고 팔도 아프다. 하루종일 닦았는데도 나아진 기미도 없다. 다 퍼다가 집에 가서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이 기름때가 벗겨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울고 싶을 정도로 갯벌은 넓고 검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다. 4시가 넘자 물이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뒷정리를 하고 갯벌을 빠져나오는데 아쉬운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겹쳐진다.
▲방제작업 마치고 정리 중
▲갯벌의 쓰레기 마무리작업
석유문명을 통해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이 굴었던 인간이, 바닷물에 잠긴 석유를 어쩌지 못해 자기 손으로 깨알같은 자갈을 닦아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날아오는 철새들에게, 바다에 사는 뭇 생명들에게 여기가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 잠시 피해있으라고 전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무능력할 수 없다.
아마 내일이 되어도 갯벌 오일펜스와 자갈 위에는 바다가 옮겨다 놓은 검은 눈물이 묻어날 것이다. 또 누군가가 그 눈물을 닦아내기 위해 손을 내밀 것이다. 바다를 살리는 길은, 갯벌을 살리는 길은 그 방법 밖에 없다.
쉼 없이 그 눈물을 닦아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