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집에 가는 날이다. 올 때는 3일을 어떻게 보낼까 싶었는데 이렇게도 시간은 간다. 햇빛에 아늑해보이는 잤던 이부자리와 집에 가기 위해 싸는 짐들을 찍어보았다. 왠지 아쉬웠다.
2.
차를 얻어타고 나온 곳은 국립경주박물관. 오늘은 휴관일이었다. 그래서 야외에 전시된 것들을 구경하기로 한다. 맨먼저 보이는 것은 성덕대왕신종, 교과서에서 보았던 비천대왕 부조를 가까이서 보니 신기했다. 햇빛에 비춰 구름 탄 모습이 더 실감났다. 여태 본 탑 중에 가장 큰 것 같은 고선사터 삼층석탑과 사천왕사터 귀부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경주라는 도시는 참 신기하다. 모든 풍경이 역사와 맞물려서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모든 풍경은 거대한 왕릉과 탑으로 어우러진다. 그게 어색하지 않은 듯,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찾는 이조차도 그 모습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추운 바람이 내년에, 또 내 후년에 온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변화없이 이 터를 지키고 있을 것 같다. 이 아름다운 터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부디 사람의 욕심이 역사와 문화를 흐리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화를 문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많이 무지했던 내 자신을 보게 된다. 문화에 의미를 담는 것은 개개인이 할 일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유식한 누군가가 말한대로 느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앎 자체가 틀이 되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느낌을 묶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산을 보고 그저 녹색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재미없고 도식적인 문화가 발전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이들이 보고 즐기고 느끼고 표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살아있는 다보탑을 만들어진 틀에 담아내려는 편의와 한계를 벗어버리고 누구라도 공유할 수 있는 즐거움으로서의 문화가, 살아있는 문화로서 누구나의 가슴에 살아있었으면 한다.
3.
경주박물관을 나와 간 곳은 안압지, 야경이 좋다고 해서 밤에 와보려고 했는데 안타깝다. 안압지는 원래 이름이 월지(月地)라고 해서 연못 속에 비치는 달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라고 알려진다고 한다.
안압지에서 만난 기념품집 아주머니가 커피 타 주셔서 열심히 먹었다. 정말 추워서 날아갈 것 같았는데 어찌나 좋았는지. 난로 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이 참 좋다! 먹을 거 주는 사람, 너무 좋다아아아~
4.
안압지에서 부지런히 걸어서 첨성대를 보고, 천마총에 가서 무덤구경을 열심히 했다. 다시 가보는 천마총은 감회가 새로웠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너무나 안타까웠다. 할 수 없이 무덤 끝이라도 찰칵. 슬슬 경주역으로 향해야 하는데, 마지막 만찬을 해야하지 않겠나 싶어 기념품집 아주머니가 추천해주신 해장국 골목으로 출동~ 황남빵 하나 사들고 할머니 해장국집에 들어가서 묵 넣은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다. 눈물나게 맛있어서, 또 먹고 싶다~
5.
대전으로 간다. 집으로 간다. 집에 간다는 것이 이렇게 설레기는 또 처음이다. 사람이 지겹다는 생각에 온 경주에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안고 다시 사람들 속으로 간다. 누가 뭐래도, 혼자가 아무리 좋다해도 사람과 부대끼고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혼자가 좋은 줄도 알고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기차 안에서 나는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