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하다.
이런 세상이 변할 수 있을까?
중국,70년대 후반까지 티베트人 최소 120만명 대학살 !!!
티베트는 면적이 250만 ㎦이며, 수도는 라사(Lhasa)다. 인구는 넓은 면적에 비해 600만에 불과하다. 종교는 불교, 언어는 티베트어를 사용하고 있다. 평균 해발고도는 무려 3,962m 로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를 자연의 나라라는 뜻의 포(Poe)라고 부르거나 산의 눈이 여름에도 녹지 않고 쌓여 있어 눈 덮인 나라라는 뜻의 캉첸이라고 부른다.
티베트인들의 대부분은 농경과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현재 정치/종교적 지도자는 인도 H.P주 다람살라에 망명중인 14대 달라이 라마로서 그는 1959년 인도로 망명한 이후 지금까지 망명정부를 대표하고 있다.
티베트는 중국에 종속당하기 전까지 어엿한 독립국가였다. 언어와 인종, 그리고 문화와 종교 등 모든 것이 중국과 다르다. 따라서 티베트의 독립요구는 정당하다. 원나라 이후 명과 청나라 시대에는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이르러 영국과 러시아가 티베트를 그들의 세력권을 만들기 위해 일부 티베트 상류층과 결합 중국으로부터 티베트를 분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중립적 입장을 견지한 티베트는 독립정부를 구성했으나 1949년 중국을 장악한 중국공산군에 의해 1950년 침공을 받게 되었다. 중국 공산군의 점령이후 14대 달라이 라마는 UN의 티베트 문제 개입을 호소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중국의 종주권과 티베트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17개 조항의 협정안이 중국 당국의 강요에 의해 강제 체결되기에 이르렀다.
중국군의 동부 티베트 지역 탄압과 달라이 라마의 신변문제를 계기로 1959년 수도 라사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자 달라이 라마와 그를 따르는 티베트인들이 인도로의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티베트는 사유재산이 몰수되고 대부분의 사원이 파괴되었으며 승려들은 투옥되거나 강제로 환속당했다.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통해서 볼 때 당시 1959년 3월 10일 하루동안 시위에 참석한 티베트인들 중에 1만 5천여명의 티베트인들이 사살되었으며, 티베트인들의 민중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중국은 6,000 여개의 불교사원 파괴와 12만명의 티베트인들을 학살하였다. 1950년에 중국이 침략한 이래 70년대 후반까지 약 120만명의 티베트인들이 시위, 투옥, 사형, 고문 등으로 사망했다.
티베트의 면적은 중국 국토의 8분의 1을 차지하지만 인구는 1%에도 못미치는 소수민족으로 전락해 버렸다. 중국이 티베트를 내놓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티베트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과 천연자원, 그리고 광활한 영토와 무엇보다 여타 소수민족의 연쇄반응을 두려워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다민족국가이며, 각 (소수)민족은 평등하다"고 헌법 제3조에도 명기하였지만, 이것은 문구상의 평등에 지나지 않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통제와 감시는 정교하고 치밀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 중국에서는 사실 이전부터 중국인과 티베트인의 통혼과 한족 이주정책, 그리고 티베트 지식인의 한화(漢化) 등을 통해 소수민족인 티베트의 민족말살정책을 펴고 있다.
[출처] 티베트 독립운동을 지지합니다 (고래가 꿈꾸는 세상-'고래가그랬어'를 생각하는 사람들) |작성자 뉴욕펑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