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길을 달려온 금강이 바다를 목전에 두고 발걸음을 멈춘 금강 하구둑. 이곳에서 금강 순례길을 시작합니다. 비단처럼 아름답기에 금강이라 불리우는 이 강에서 허망한 운하 계획에 대한 생각은 이제 잊혀갑니다. 비단같은 강. 금강을 출발하며
순례단이 드디어 금강에 도착하였습니다. 2월 28일 김포 애기봉을 출발한 이후 71일차에 해당하는 오늘 금강하구둑에서 금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제 5월 초순까지는 봄날 따스한 햇살과 함께 비단길 같은 금강을 따라 순례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한반도 운하 논란에서 금강에도 운하가 만들어질 계획이 있냐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사실 금강운하는 영산강 운하처럼 딱히 특별한 구상이나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운하 추진론자들은 이 아름다운 강에도 운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금강과 버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러한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금강에 필요한 일은 인공적인 시멘트 콘크리트 시설을 만들고, 강바닥을 파헤쳐 강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하구둑을 개방하고 강이 걸어가야 할 원래의 물길을 찾아주고, 하천변에는 자연이 뛰노는 공간으로 복원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천리길을 굽이쳐 오며 바라만 봐도 가슴이 뛰는 이 금강에 서서 순례단은 다시 길을 떠납니다. 금강을 따라 화려하지만 소박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 나설 것이며, 금강을 이루는 비단길 같은 자연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볼 것입니다. 위정자들이 제시하는 황망한 계획이 아니라, 강이 전해주는 수많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그 길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예정입니다.
금강, 웅진, 적등진, 백마강. 금강의 여러 모습들
금강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대지를 굽이쳐 흐르며 ‘비단처럼 아름답다’ 하여 금강(錦江)이라 합니다. 비단처럼 아릅답고, 다양한 지역의 산천을 따라 흐르다 보니 금강의 이름과 모습은 다양합니다. 금강의 대표적인 명칭인 금강(錦江)을 비롯, 웅진(熊津), 적등진(赤登津), 백마강(白馬江), 심천(深川)등이라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처럼 세월을 따라흐르면서 수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금강은 여기 하구둑에서는 멀리 떨어진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신무산 중턱의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충청남북도를 거쳐 강경에서부터는 충청남도․전라북도의 경계를 이루면서 서해의 군산만으로 유입하는 우리나라 6대 하천의 하나이며, 유역면적 9,810㎢, 유로연장 397.25㎞로 남한에서는 한강과 낙동강 다음으로 큰 강입니다. 말 그대로 천리길을 굽이쳐오는 강입니다.
발원지에서 시작하여, 구리향천, 정자천, 남대천, 봉황천, 송천, 보청천, 초강, 갑천, 미호천 등 크고 작은 지류가 전라북도와 충청북도, 충청남도에서 합수되며, 하천 개소수는 총 486개로 이중 국가하천은 7개, 지방1급하천은 19개, 지방2급하천은 460여개에 달합니다. 현재 금강권역에서 2000년 기준 금강유역 인구는 3,060,877명, 금강서해유역은 650,579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금강은 상류부에서는 대전분지·청주분지, 중류부에 호서평야(湖西平野:內浦平野), 하류부에 전북평야가 위치해 있습니다. 금강은 이들 지역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의 생명수이며 삼도의 역사와 문화, 삶을 간직하고 서해로 흘러갑니다. 인간이 있어 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강이 있어 인간이 있었습니다
오늘 순례길이 첫 발걸음이 시작된 지점은 서천군 관내 금강하구둑의 바로 옆에 있는 작은 공원입니다. 금강에는 1980년대에 신탄진 인근에 대청 다목적댐이 건설되었으며, 1990년에는 금강하구둑이 완공되었습니다. 이 하구둑은 방조제 총길이는 1,841m로 연간 3억 6천만 톤의 담수를 공급합니다. 이를 이용하여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일원에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금강 주변 지역의 홍수를 조절하고 있다 합니다.
이 금강하구둑이 막히기 이전에는 강경부근에서 하구까지 작은 배가 소항하여 이용되었다 하나, 영산강 등 여타의 강들과 같이 호남선의 개통과 도로를 이용하는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운송 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운하를 그 당시 나룻배와 같이 동일시 여기는 것은 오류를 넘어 외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룻배이든 운하이든 철도와 도로 교통이 발달한 이후에는 역사적으로 퇴조하였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할 것입니다. 천리길을 달려온 금강은 서해바다를 만나지 못하고 여기 하구둑에서 정체됩니다. 하지만 금강하구둑이 막힌 이후 금강의 물줄기는 서해의 장항갯벌로 나아가지 못하고, 방향이 바뀌어 군산산업단지 방향으로 바뀌면서 하구의 생태계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금강하구둑 배수갑문이 군산쪽에 위치해 있어 물길이 군산산단 방향으로 바뀌고, 전형적인 사행천이 직선화되면서, 군산산단을 보호하기 위한 도류제와 방파제로 인해 토사가 쌓이고 있습니다. 금강하구에는 이렇듯이 금강하구둑, 도류제, 방파제 등 없던 시설들이 순차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 모든 시설이 강의 흐름과 물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강은 자연을 따라 자연지세를 거스르지 않고 아래로 흘러갑니다.
산을 만나면 돌아가듯이 굽이 굽이 형성된 지형 지세를 따라 순리에 맞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하구에서 시작되었으나, 이제 그 하구에서부터 인공적인 시설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물길을 바꾸고, 상류에는 댐과 같은 시설을 두어 물길을 마음대로 하겠다고 합니다.
비단 금강하구둑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제방 공사는 둘째치고라도, 이미 조성된 하천의 둔치는 농경지와 야구장, 축구장 등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자연을 위한 배려와 마음은 극히 일부분의 공간에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그저 우리 사회가 자연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 자족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순례길에 서천쪽에서 금강을 바라다보면 강건너 멀리 높다란 시설이 눈에 들어옵니다.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이 지역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고압적으로 서 있는 시설입니다. 알고 보니, 그 시설이 바로 군산시에서 설치한 철새탐조대라 합니다. 철새를 탐조한다는 시설을 어떻게 저렇게 만들 생각을 하였을까요? 산처럼 높다른 위치에서 발 아래에 자연을 두고 관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저런 고압적 시설에 이른 것은 아닌가 합니다. 자연은 그저 대상에 불과할 뿐인 것 같습니다. 반대로 서천쪽에는 일부 구간에 철새보호를 위한 시설들이 있습니다. 다만 전체 구간이 너무 짧고, 각종 하천변 공사로 인해 일부 구간은 단절되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두 다 알고 있다는 인간의 오만한 인식이 강이 지나야 할 길에, 철새가 노뉘는 곳에 인간 위주의 고압적 시설을 설치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멀리서 사람의 인기척만 들려도 푸드득 날아가는 철새들의 입장에서 시설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탐조 문화가 발달한 외국의 시설들을 보면, 사람이 찾기에도 어렵게 잘 숨겨서 새를 관찰하는 시설을 많이 만드는데, 우리는 눈에 너무 잘 보이는 과시욕의 문화가 발달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과시욕에서 만들어진 탐조시설이 아니라, 작고 소박하며 자연의 지세를 따라 만들어졌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있어 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강이 있어 인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있어 자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있어 인간이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도 자연에서 태어났으며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금강을 살리는 평화의 발걸음이 모여서> 오늘 순례단은 오후 2시에 ‘금강을 살리는 평화의 발걸음 생명평화도보순례 출발행사’를 시작하여 금강 순례를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금강 순례 출발행사는 종교환경회의 주최로 개최되었으며,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대한불교조계종 전북․충남본사(금산사, 선운사, 마곡사, 수덕사), 금강운하백지화국민행동, 대전충남민예총 서천지부가 공동으로 주관하였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순례단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서천 민예총 회원이신 홍상희님이 조태일님의 “국토서시” 낭송에 이어 충청지역의 사회단체의 순례단 맞이 발언이 진행되었습니다. 충남 시민사회연대회의 이상선 상임대표는 “모두를 환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허망한 꿈을 꾸고 있다. 탐욕스러운 꿈을 꾸고 있다. 세상을 모두 소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다. 한반도 물길을 모두 잊는다는 허망한 계획과 헛된 욕망을 이겨야 한다. 진정한 가치를 정립하고 후세에 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운하 백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합니다.
전북지역의 김재승 선생님은 “전북과 충청이 금강으로 하나되어, 금강운하 백지화 마무리하자”고 구호를 선창하였습니다. 충남농민회의 배형덕 선생님은 “농번기라 많은 농민들이 참여하지 못해 죄송하며, 농민들도 함께 하겠다. 금강운하 백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합니다. 서천의 양수천 선생님은 “금강하구는 하구둑으로 이미 마지막 구간이 막힌 상태이다. 이미 하구에 LNG 복합발전소 공사중이며, 이로 인해 금강하구 수온이 8‘가 높아질 예정이다. 0.5’가 상승해도 생태계에는 문제가 있는데, 이렇게 높아지면 서천 앞바다 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 우리는 장항 갯벌 간척사업을 저지하였다. 이미 이렇게 금강이 훼손되어가는데, 금강을 더 파괴하는 것만이 우리 사회가 새로 깨닫을 수 있는 길인가?” 이어 이어 민예총 서천지부 관계자들의 풍물공연과 선비춤이 있었으며, 이원규 시인의 순례단 소개와 이필완 단장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이필완 단장님은 “새만금 구간을 지나면서 매우 힘들었다. 순례는 한반도 운하 백지화를 위해 마음을 모으는 여정이다. 순례단은 이번 여정뿐만 아니라 운하 백지화를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함게 마음을 모아나가자”고 참석자들에게 제안하였습니다. 오늘 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전북․충남본사의 공동성명서 낭독, 순례단의 금강선언문 낭독이 있었으며, 이후 순례단은 행사 참석자들과 함께 옥포리 제방길과 도로를 따라 옥포리까지 순례를 진행한 이후 종료되었습니다.
오늘 순례단은 우천 관계로 국가습지보호사업단 금강시범사업단 강당에 여정을 풀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선운사 주지이신 법만 스님은 오늘 선운사 대중, 학인 스님 30여분과 함께 참여하셨습니다. 스님은 “운하는 문화유적과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사업”이라며, “경제라는 미명아래 무분별한 개발로 그에 대한 휴유증은 대재앙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콘크리트 옹벽을 쌓으면 엄청난 생명이 죽어 나갈 것입니다. 이 모든 인과가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우리 사회의 최근 문제점으로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은근과 끈기가 사라지고 눈앞에 이익만 추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말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할 때”라고 지적하시고, 또 이명박 정부에게는 “환경파괴를 무릅쓰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효과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먼저 생명의 중요성을 생각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셨습니다.
대전대동종합사회복지관 권술용 관장님은 “오늘 한겨레 신문에서 법정 스님 말씀 중 ‘성스러운 땅을 난도질을 하여 괴물로 만든다’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고 공감하셨습니다. 그래서 순례단과 뜻을 같이하고자 이렇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도 자연과 생명이 온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발 위주의 사고방식이 사라지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날 것”이라며 경고의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국정 운영자들에게도 “운하 및 경제 등에 대한 개발위주의 정책을 빨리 재고하여 돌이키지 않으면 현 위정자들은 물론 후손에게도 재앙이 따를 것”이라며 다시 한번 강조하셨습니다. 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부분으로 “옛날 독재정권과 개발독재의 선상에서 ‘잘 살아 보자’ 라는 마음이 국민정서에 기초를 이루고 있으며, 그러한 마음이 정교하게 다듬어 지지 않은 상태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