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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

6년, 그리고 또 시작

by bravoey 2010. 7. 14.

1.
2004년 오늘, 처음 대전충남녹색연합 이라는 곳에 발을 들였고
나에게 '환경운동가'라는 나름 거창한 호칭이 붙는다는 실감은 전혀하지 못한 채
헉헉거리며 6년이 지난 2010년 오늘까지 왔다.
정말 오늘까지 오리라고는 매년 예상하지 못했다.
뭘 하는지도 모르고 대전역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쳤고,
일회용봉지 어떻게 쓰고 있나 조사하러 다니면서 상점아저씨들한테 쿠사리 듣고,
회원운동 한답시고 사람 사이를 종횡무진하다가
스물 다섯의 내가 서른 한 살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환경운동가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정말 빠르다.

2.
운동선배들에게 5 18 혹은 새만금, 부안핵폐기장이 있다면
내게는 2008년 촛불문화제가 있다.
그냥, 촛불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많은 이야기가 대전역 광장에 남아있다.
진실과 거짓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통해
가끔 노을지는 저녁에 대전역광장을 지나가게 되면 한참을 서서 그 광장을 지켜보게 된다.
거짓말처럼 텅빈 그 광장에 아직도 사람들의 외침, 웃음, 눈물이 머물고 있는 것 같다.
내 삶의 한 페이지에 촛불과 함께 한 저녁이 쓰여져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 괜찮았어,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민주주의와 사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내가 하는 운동이 활동가들의 힘으로만, 단체의 역량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앉아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서 진정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프로그램이, 어떤 사업이 잘 먹혀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녹색세상을 함께 꿈꾸는 '사람'에 의해서 움직여진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절실히 깨달았다.
활동가가 버려야 할 오만함 중 하나는 '나 하나의 움직임'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함께해야 할 움직임'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부터 모든 운동은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위한 첫 걸음이 아닐까.

3.

6년을 해서 뭐가 남았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한 일도 아무것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무 것도 없었다.
가끔 길에서 발견하는 작은 꽃들, 전봇대 위를 기어올라가는 신기하게 생긴 작은 벌레, 금강을 힘차게 나는 매들....
내가 6년동안 거쳐온 수많은 뭇생명들은 내게 묻고 있다.
네 자리는 어디냐고, 너도 너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지 않냐고 말이다.
인간들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순리대로 살아온 대자연이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다.
내가 아무리 환경운동을 잘해도 내 손으로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죽은 생명을 살릴 수 없다.
자연 스스로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해 왔다.
내가 10년을, 100년을 더 한다고 해도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4.
축하한다, 는 말을 해준 동료활동가의 말에 눈물이 핑 돌뻔했다.
고작 그거냐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내겐 격려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래, 너 잘했어. 괜찮았어, 라고 말해줄.
왜냐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나는 또 시작하니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달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