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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맨발

by bravoey 2011. 1. 31.

문태준의 이 시집에는 '뒤란'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대나무숲이 있는 뒤란>, <역전이발>에도 어머니와 뒤란, <화령고모>에도 뒤란이 등장한다. 뒤란은 여성과 관련이 있고, 아무도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찾아가는 이는 존재하지만, 그 곳에는 애초에 어떤 사람도 없다. 다만 대나무나 바람이 존재할 뿐이다. 어떤 구조의 '뒤'쪽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찾아가면 보이는 과거의 어떤 기억, 외로움의 앞모습, 공허한 공간으로서의 뒤란.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고, 찾아가는 뒤란. 그의 시는 뒤란 같은 것일지도.
꽤 오래 읽었다. 시의 맛이 자간과 자간사이, 행간과 행간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 숨겨진 끈을 하나하나 풀며 가는데 있긴 하지만, 뭐랄까 모르는 단어 하나도 없는데 끈의 끝을 찾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아, 가재미도 읽어야 하는데 걱정가득.
애달픈 마음을 잘 표현해 준 시가 하나 있어 몇 번을 읽었다. 몇 번을 더 읽으면 외워질까? 한 때 기형도의 <빈집>이 너무 좋아, 외우며 다니던 적이 있었는데, 남들 앞에서 외워보라면 못하겠더라. 

어리숙한 나에게도 어느 때는 당신 생각이 납니다
당신의 눈에서 눈으로 산그림자처럼 옮겨가는 슬픔들
...
당신과 나 사이
이곳의 어둠과 저 건너 마을의 어둠 사이에 
큰 둥근 바퀴 같은 강이 흐릅니다

- <저물어가는 강마을에서> 중에서 

사랑에 어리숙한 나에게,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