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함부로 쓰던 편이었는데, 드디어 문제가 생겼다. 이런저런 자료들을 백업해두고 복원솔루션을 돌렸다. 모든 데이터는 2007년 6월 11일로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도록. 참 간단하다.
삶도 노트북처럼, 어느 때의 기억을 저장해두었다가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원된 이후의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겠지만 적어도 돌아간 그 순간부터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있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단 한 번, 돌아갈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어느 때로 가고 싶냐고.
여러가지 순간들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할 것 같다.
더 나은 기억은 없다. 더 나은 순간은 없다.
모든 순간들이 다 평범했고, 같은 크기의 고통이자 행복이었다.
기대하고 바라던 일들도 모두 시간이라는 바람이 스치고 가면 같은 무게의 빛깔로 다가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대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바램만큼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도 없다.
높은 산에서 떨어지는 중이다. 뭔가 잡을 곳을 찾아 허공에 손을 휘저어 보지만 잡히는 것은 없어 눈만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르는 중이다. 머리와 가슴은 이미 바닥을 쳤다. 언제나 다 떨어질까. 언제나 기대와 바램이 바닥에 다 부서져 없어져 버릴까. 피투성이가 된 바닥을 보면 삶에 대한 희망이 솟을까. 붉은 피를 보며 생에 대한 열망이 떠오를까. 다 없어진 곳에서 다시 삶은 복원될 수 있을까.
겁나지 않는다. 다만 그 바닥까지 떨어져 부서져 버리고 싶을 뿐이다.
그 순간이라면 다시 몇 번이라도 돌아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