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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

김소진-함정임

by bravoey 2011. 7. 24.
헌책방을 전전하며 책을 사모으던 휴학생 시절.
솔출판사에서 나온 김소진의 소설집 두 권을 구하고는 이게 왠 횡재냐고 박수치며 아르바이트를 갔었던 기억이 있다.
'눈사람 속 검은 항아리'을 통해서 만났던 그의 소설들이 내게 소설쓰기에 대한 다른 감회를 던져주었던터라 더욱 반가웠다. 딱 이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손 끝에 문장들이 덕지덕지 붙어 쏟아내기 바쁜 내 수준에는 아직 먼 길처럼 보이지만. 아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좋은 작품들을 더 만날 수 있었을텐데.

그의 아내가 함정임 이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함정임의 소설은 김소진과는 정말 달랐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중독>은 아직도 인상깊은 작품 중 하나.

아, 어줍잖게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함정임이 남편인 김소진을 추억하는 글을 보았기 때문이고
내 어두운 방 구석에 처박혀 있던 <고아떤 뺑덕어멈>을 우연히 펼쳐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가 그곳에서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막 외출하려던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내가 날 만나고 싶으면 예술의 전당에 나가려던 참이니 영상자료원으로 오라고 그에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또 그리고 그날 밤 그가 느닷없이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우리는 지금쯤… <함정임>

지금은 '그 때'의 후회 혹은 추억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두 사람의 인연이 묘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