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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어른이 그림책

by bravoey 2018. 1. 7.

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 / 문학동네


이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 과연 적은 존재하기나 했을까. 마지막 돌파구로 물병을 던졌을 때, 거기에 받을 사람이 실재하긴 했나 하는 생각이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허구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도 않은 대상에게 총을 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적의 참호에 실재를 증명하는 사진과 물건들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혹시 오랜기간 전쟁에 시달린 주인공의 물건이 아니었을까. 

비단 전쟁이라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황 또한 이런 전쟁이 아닐까 싶다. 타인을 믿는 것에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 타인을 향해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웹세상, 나와 생각이 다른 이를 적으로 보게 되는 지금. 요즘 포털사이트에 달리는 댓글, 기사들을 보면 이런 전쟁터가 따로 없다. 총 한자루 쥐고 쏘며 내 현재를 구덩이에 가두고 살아가기 급급한 세상. 나 또한 그 구덩이에서 총 한자루 쥐고 떨고 있는 것 같다. 더 나은 삶이 이 전쟁만 끝나면 기다리고 있을거야, 이게 끝나야 해, 이렇게 말이다.

이 전쟁을 끝내는 건 바로 나 자신. 주인공 자신이었다. 누가 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으므로. 내가 끝내야 한다. 그래야 나도 살고, 저 너머에 내 적 아니 내 이웃도 살 수 있다. 갈 수록 무너져 가는 사람공동체는 아이들이 살아갈 터전마저 병들게 한다. 내 아들들이 이런 삭막한 세상에서 살도록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처음 접한 다비드 칼리의 그림책. 그림과 짧은 글로도 이렇게 강렬한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그림책에 쏙 빠지게 한다. 다음 작품도 기대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