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그들의 압제와 차별정책, 절대적 빈곤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의 젊은 청년들. 그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는 자신의 온몸을 산화시켜 이스라엘인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뿐이다.
어릴 때부터 형제처럼 자라온 '자이드'와 '할레드'도 어느 날 저항군 조직의 부름을 받고, 기꺼이 "순교자"의 소명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막상 가슴에 폭탄 띠를 두르고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로 향하던 두 청년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당하는 이스라엘, 공격하는 팔레스타인?
언론이 늘 이스라엘의 편에서 팔레스타인을 가해자처럼 말하는 것은 늘 이스라엘이 당했을 때만 보도가 되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시오니즘의 귀신들로 팔레스타인을 끝없이 공격하는 것이 더 자명한 사실이다. 이제 두 나라는 평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영화에서 자이드가 말하듯 피해자인척 공격하는 그들을 향해 자이드는 공격하는 살인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저항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복수전을 벌이고 있는 두 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자이드의 두 눈
마지막에 가서 카메라는 자이드의 두 눈을 클로즈업하며 마친다. 이스라엘의 젊은 군인들이 잔뜩 탄 버스 안에 앉아서 그는 아무말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에 찬 폭탄의 끈을 잡고 언제 터트릴지를 가늠하는 중인지, 마지막 순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옛 추억을 더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에게 느껴지는 건 폭탄을 안고 버스에 탄 자이드의 두 눈, 그 속에 있는 버스안의 광경 그리고 나였다. 왠지 그 때 그 순간이 자이드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폭탄이 터지든지, 터지지 않든지 그는 늘 폭탄을 감고 있는 사람처럼 살아왔기(그가 가족과 즐거웠어도) 때문에 그 순간이 그에게 별다른 감격을 주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눈물이 핑 돌았던 것은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갈 수 있을지 확신하고 있을지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복수심의 끝에는 천국이 있어야 하는데, 그 천국이 누구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그런, 불확실한 것이기에 슬펐다.
예루살렘이었다면?
텔아비브는 현대적인 도시로 예루살렘과는 확실히 차이가 나는 곳이다. 자이드와 할레드가 텔아비브에 들어선 순간, 자이드의 마음에는 이곳을 폭파하겠다는 생각이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지중해변에 널린 파라솔과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은 마치 유럽의 어느 나라와 같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이드가 만약 예루살렘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면 영화가 너무 빨리 끝났을게다. 검은옷의 종교주의자들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을테니까.
천국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다만 화해할 수 없어 몸에 폭탄을 지닌 듯 살아가는
두 나라의 현실 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현실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