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가 촛불을 든 까닭은
박은영(bravoey@empal.com)
출장을 다녀오던 K씨, 역 광장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잠시 그들 옆에 서서 촛불문화제를 지켜본다. 사실 K씨가 그들을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그는 설마 우리나라 대통령이, 우리나라 정부가 국민에게 위험한 그런 음식을 자국에 들여오겠냐고, 광우병에 대한 이야기는 과대하게 부풀려진 괴담이고, 누군가 뒤에서 조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정부에서 밀어붙이면 하게 될텐데. 반대해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생각했다.
쓴 웃음을 지으며 돌아서려는 순간,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에게도 저 아이 또래의 딸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을 듣고 싶었다.
“저는 지금 15살인데요, 5년만 있으면 스무 살이 되요. 대학도 가고 싶고, 직장에서 첫 월급도 받고 싶은데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먹는 것도 걱정하면서 먹어야 하고, 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살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 싫어요.”
학생의 말처럼 사람들은 불안하다. K씨는 급히 발길을 돌렸다.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K씨 또한 마음 깊은 곳에 보이지 않던 ‘불안함’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 쪽의 말이 옳든지, 우리는 갑자기 깊은 불안함에 빠졌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그는 그 불안함을 해소하고 싶었다.
K씨는 막연하게 신문과 뉴스로 들었던 미국과 한국의 쇠고기 협상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부는 총선 전까지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뼛조각 검역과 30개월령 미만 살코기 안전 입장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총선 후 4월 18일, 30개월 미만 쇠고기(편도, 회장 끝 제외)와 30개월 이상 살코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여러 건 발생해도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에 대해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박탈하지 않는 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수입중단 처리를 내릴 수 없다는 데 합의했다. 또 미국산 쇠고기 검역과정에서 전수조사할 권한이 없으며 소의 뇌, 척수 등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이 발견돼도 샘플조사만 할 수 있다.
K씨는 광우병 괴담이나 여러 여부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협정이 타결될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이 궁금증은 비단 K씨만 가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K씨는 생각했다. 뭔가 정부쪽의 이유가 있겠지. 이런저런 자료를 읽어보니 정부쪽에서 있어야 할 뭔가의 이유는 단지 국제무역사무국(OIE)이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검증된 국제 기준이라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또 동물성 사료 금지 조처가 취해진 1997년 이후 태어난 소에서는 광우병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도축․가공 과정에서 국제 기준에 따라 뇌, 척수 등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은 제거하면 안전하다고 한다.
K씨 마음의 불안이 커졌다. 아직 광우병 발견 안 되었으니까 안전하다니. 아직은 괜찮은 것이 ‘안전한’ 것일까? 게다가 정부는 협상 타결 조건이 미국 내 조건과 달랐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즉시 보다 안전한 EU(유럽연합) 국가들의 기준을 참조했다고 한다. K씨는 혼란에 빠진다. 전에는 미국 기준이 안전하다며! 게다가 OIE 기준은 국제기준이라 그 조건에 대한 변경은 불가하다는 입장도 사라졌다. 말이 자꾸 바뀐다. 그들이 입이 아프도록 말하는 과학적 증거가 그들의 협상에는 없었다.
그에 비해 광우병 위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광우병의 과장된 공포를 가지고 정치적 선동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K씨는 얼마 전까지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광우병이 위험하지만 국민들에게 안전하다고 말할 때에는 확률을 두고 얘기해서는 안 된다. 광우병이 위험하다면 광우병이 의심되는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보다 안전한 대책은 없다. 광우병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장치들마저 없애고,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K씨는 역 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민에게 안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의사표현을 위해 촛불을 든 것이었다. 얼마 전 발표한 대통령 담화문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K씨는 역 앞에 모였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했다. 촛불문화제에서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선동에 끌려나올 정도로 비이성적이지도 않았다. 전문가보다 더 똑똑한 말로 정부의 태도를 꼬집어 내는 학생, 정치적 선동이 아니라 안전하지 못한 먹거리에 대한 순수한 걱정으로 그 자리에 섰음을 밝히는 청년들, 아이들을 걱정하며 눈물짓는 엄마들일 뿐이었다. K씨는 그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은 누구인가 다시 질문해 보았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촛불을 들게 한 것은 정부였다. 정부가 수입하기로 결정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였다. 그리고 정부야말로 국민을 과장된 겁쟁이들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K씨는 바쁜 일정으로 보지 못한,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한 미국 축산업에 대한 시사프로그램을 보았다. 정부가 수입하겠다던 미국 소들, 미국 축산업의 실태와 광우병에 걸린 미국인의 이야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광우병 쇠고기 뿐 아니라 조류인플루엔자나 GMO(유전자조작식품), 식품 이물질 파동 등 시민들이 먹거리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도.
K씨는 종종 육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파괴되는 환경과 가축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상황을 한탄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그럴 때마다 “동물 걱정할 여유있으면 고기 맛도 못 보는 가난한 사람들 걱정이나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닭과 돼지, 소 등 가축이 소비자에게 오기까지 과정을 그린 어느 TV프로그램에서 고통을 느끼는 존재인 가축들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투여하고 좁고 더러운 우리에서 살아가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참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광우병 쇠고기도 결국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가축들의 성장과 죽음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인간의 폭력적인 오만함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닐까?
K씨는 아마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사람과 똑같이 수입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혹은 찬성하는 사람도 같은 종류의 불안함을 가슴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불안함의 정체는 우리가 먹는 먹거리가 어느 정도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사실과 그 위험을 만든 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함을 해소하려고 하지 않고 ‘이윤‘이라는 달콤한 유혹 속에서 허우적대며 위험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바로 불안함이었다. 지금의 대통령은 사람 속에 있는 그러한 불안함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K씨는 촛불을 들고 역 광장 앞에 앉아있다. 그가 느끼는 불안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그를 불안하게 하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공포에 떠는 겁쟁이가 아니라, 어떻게 되든 괜찮은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우리의 불안함을 촛불 앞에 내어놓을 때 반드시 세상이 변하리라는 믿음으로.
- 미디어충청에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