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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글들/칼럼 및 짧은 글

리얼 그레이스, 리얼 라이프(real grace, real life)

by bravoey 2009. 2. 12.

나는 자취생활만 10년째 하고 있다. 이사를 많이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자취집이 있다. 평범한 원룸이었는데, 베란다로 나가면 원룸 뒤쪽에 공터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공터는 말 그대로 그냥 아무 것도 없는 맨 땅이었다.

봄이었다. 무심히 바라본 그 공터에서는 새파랗게 젊은 싹들이 맨 땅 위로 힘차게 손을 뻗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서 그것들은 옥수수로, 파로, 무와 고추로 아무 것도 없던 땅을 가득 채웠다. 그 과정을 매일 보던 나는 인생 스물 여덟 살면서 처음으로 ‘신기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병이 기적적으로 낫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느낌이었다.

온통 새파란 그 곳에서 하나님의 숨소리가 들렸다. 씨를 뿌리고 잡초를 다듬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식물이 자라도록 하는 힘은 그 분이 지으신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햇빛과 땅 속에 흐르는 생명력, 바람, 공기, 이 모든 것이 그것들을 자라게 하고 그렇게 자라난 것들로 인해 사람이 먹고 살아간다. 하나님은 늘 내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든 공간에서 자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보편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