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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by bravoey 2010. 1. 14.


 폭설로 거리가 눈밭이 되고, 사람들이 춤추듯 조심스럽게 거리를 걷던 12월의 어느 날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소설 속 배경이 그린란드와 북극해를 중심으로 펼쳐져서일까, 눈에 파묻히듯 이야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눈 쌓인 옥상에서 추락한 한 아이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코펜하겐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어린 소년이 추락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경찰은 단순한 실족사로 처리하지만, 같은 아파트 건물에 사는 스밀라 야스페르센은 소년이 눈 위에 남긴 발자국을 보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스밀라는 죽은 소년의 집에서 발견해낸 편지와 아이가 남긴 녹음 테이프 등의 단서, 빙하학을 공부하면서 익힌 눈에 대한 지식으로 죽은 소년 이사야를 둘러싼 음모를 온 몸을 던쳐 추격해간다. 결국 스밀라는 이사야의 죽음 그 근본이 퇴어크와 로옌이라는 생물학자와 의학자의 어리석은 욕망에서 출발했고, 그들의 욕망을 위해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 끝을 맺는다.

 간결한 문장에 담긴 구성의 긴장감, 스밀라라는 캐릭터가 주는 매력, 덴마크-그린란드-이누이트족을 연결하는 낯선 배경이 어우러져, 소설의 매력은 아는 사람이라면 기염을 토할 정도로, 얼음위에서 스케이트가 미끄러져 나가듯이 마음 속으로 빨려들어온다. 추리소설은 기본, 로맨스와 빙하학이라는 학문, 그린란드인의 문명에 대한 이야기가 골고루 엮여있어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스밀라의 이야기가 주는 여러 가지 매력 중 소개하고 싶은 하나는 삶의 본질은 ‘온기’라는 사실이다. 얼음처럼 차갑던 스밀라는 이사야를 둘러싼 배경을 파헤치면서 수리공 푀일을 사랑하게 되고, 그가 가진 순수함과 따뜻함에 어려운 순간을 이겨낼 힘을 만들어낸다. 비록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그 상황이 주는 위협이 그녀를 공포에 빠지게 하지만, 한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공포 속으로 뛰어드는’ 그녀의 시도는 아마 그녀 마음에 자리잡은 온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선 거리에서, 나는 눈(雪)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발견했다. 그것은 눈이 차갑기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다. 세상이 차가워질수록 더 많은 온기가 필요하다. 스밀라와 같이 차가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