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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요르단

Jordan-31. ④ 페트라와 와디럼사막

by bravoey 2011. 2. 11.

내가 처음 만난 광야는 이스라엘에서 였다. 이집트를 가려고 하이파라는 도시를 질주하면서 만난 광야길. 그 광야길에서 받은 느낌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성경에서 보던 그 막연한 광야를 처음 맞이한 기분이란. 오늘 떠나는 페트라 여행길에서 나는 또 다시 광야길을 만났다. 아라바 광야, 내 두 번째 광야길.


아라바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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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바는 거친 들 이라는 뜻이다. 사해 남단에서 아카바까지 150km. 이곳을 중심으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었는데 그 이유는 풍부한 물과 구리광산 때문이었다고 한다. 성경 여호수아서 12장에 아라바라는 지명이 등장하고 예레미아서 2장과 39장, 52장에도 등장한다. 회오리바람이 작게 일어나 기둥처럼 서 있는 장면을 몇 번 보기도 했다.

구약성경을 펴면 당연하게 접하던 이스라엘 백성과 광야길. 그 광야길에서 40년을 떠돌다가 들어선 가나안 땅. 광야길에 대한 여러 가지 설교도 많고, 이야기도 많지만 역시 한 번 보는 것이 백번의 이야기보다 낫다는 것을 실감했다. 덥고 그늘 하나 찾을 수 없는, 끝도 보이지 않는 광야는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걸었던 곳이 정확히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짜증이 이해가 되었다. 그늘 하나 없고, 물이 나올 희망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으며, 먹을 것도 없이 그들이 믿을 사람은 모세와 하나님이었을 것이다. 나라도 다시 이집트의 노예생활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세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광야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하나님만을 만났을 것이다. 하나님 당신이 원한 것은 당장의 현실에서 더 나은 무엇, 먹고 입고 편한 무엇이 아니라 그를 의지하는 삶을 요구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페트라, 광활한 나바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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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이 자랑하는 페트라, 유네스코가 공인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그리스도를 만난후 갔던 아라비아는 바로 이 나바트 왕국의 수도 페트라를 일컫는다고 한다. 로마식 지명으로 '아라비아 페트라'.

페트라의 시작은 좁고 높은 시크길로 시작된다. 시크는 아랍어로 협곡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그늘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는 접점이 되기도 한다. 이 시크길의 끝에, 그 영상으로 여러번 보았던 엘카즈네의 모습이 보인다. 아, 첫 발견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캄캄한 밤이었다면? 아무도 없던 시크길을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드러난 그 끝. 좁은 틈을 지나 보이는 거대한 붉은 암벽건물의 모습. 그 발견자의 마음으로 본 엘카즈네의 모습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엘카즈네는 보물창고라는 뜻인데, 새봄의 설명에 의하면 여기엔 사연이 있다고 한다. 건물 정면 제일 윗부분이 항아리 모양인데, 이곳에 나바트 인들의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물을 꺼내겠다고 사람들이 이 곳을 올라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원래의 계획은 아론의 산까지 가겠다였지만, 엘카즈네를 보고 원형극장까지 걷자 넉다운.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서 왕족무덤지역이 보이는 어딘가를 기어올라갔다. 겁도 없다. 내려올 생각은 하지도 않고 덥석 올라가서 탁 트인 전경을 감상했다. 사람들이 개미같이 멀리 열주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기묘한 붉은 벽의 색을 보고 있으면, 왠지 소설을 한 편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여기 숨어서 1년을 보낸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트라에서 보는 밤하늘은 어떨까 궁금했다.

고양이가 많은 어느 상점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상점에서 파는 투박한 목걸이를 사는 외국인이 보였다. 내가 무심코, 저런 걸 사는 사람도 있네, 라고 했더니 새봄이 그렇게 말했다. 저 사람들은 물건을 보는 편견이 없다고, 그냥 만들어진 그대로를 좋아서 사는거라고 말이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뭔가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비하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여기에 왔으면 여기의 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저기 저 높은데서 건드리지도 않고 비교만 하고 있는 몹쓸 짓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붉게 물든 페트라, 그 페트라는 나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그런데 나는 어디서 그 페트라를 바라보고 있던 걸까?


붉은 사막의 그림자, 와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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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럼은 요르단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요르단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인데, 그걸 못 보고 왔다. 광야길을 쉴새없이 달려온 탓에 체력이 바닥이었다. 입장료도 꽤 비싼 편이어서 그냥 돌아갈까 생각도 했는데,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사막에 발이라도 디뎌보자 생각하고 티켓을 끊었다. 사막투어는 지프차나 지프차로 개조한 승용차를 타고 하게 된다. 덜컹덜컹 엉덩이가 부서져라 달리는 할아버지 운전수님. 붉은 와디럼의 모습이 내게는 뭐랄까, 지쳐보였다. 저녁노을이 아련하게 사막을 비춘다. 로렌스 스프링은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에서 로렌스가 물을 찾아 먹던 곳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라 한다. 새봄이 올라가 볼테냐고 하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저기에 물이 있다고 믿어, 라고 말하며 사막의 모래바람을 몇 컷 찍고 바라보았다. 붉은 사막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햇빛이 그대로 물감이 되어 모래를 적신 것처럼 붉디 붉었다. 페트라에서 본 붉은 사막의 여운이 여기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몇 천년을 이 사막을 떠돌던 이 붉은 모래들 입자 하나하나가 지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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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럼의 별빛은 후일로 기약하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피타를 여러가지 소스에 찍어먹었는데, 주로 콩을 갈아 만든 것이라고. 닭고기가 조금 지겨웠는데, 이 소스는 정말이지 쵝오! 아, 그립네.
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한 버라이어티 했다. 세상에나, 도로에 가로등이 하나 없어서 도무지 앞 뒤를 볼 수가 없었다. 길을 한 번 잃었는데, 새봄과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래뿐인 시골길을 달리는데, 혹여나 뭐가 튀어나올까봐 무서웠다. 다행히 지나가는 트럭의 불빛에 의지하며 암만에 도착. 정말이지, 자려고 눕자마자 이게 꿈인가 싶었다. 이로서 내 운전경력에 또 다른 정점을 맛본 것 같다. 후에 돌아와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를 보니, 영화의 배경인 와디럼의 모습이 새로웠다. 아, 아라비아 로렌스는 재미없었다.

 - 자료참고 : <요르단>, 김동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