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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요르단

Jordan-31. ⑤ 느보산 모세기념교회

by bravoey 2011. 2. 11.


새벽마다 들리던 기도소리도 못 듣고 잤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도 띵하고 몸이 완전 무거웠다. 역시 체력부족! 그러나 봄이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미친듯이 먹고 배 두들기며 느보산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모세의 마지막, 느보산에서


 느보산은 암만에서 차로 1시간정도 걸렸다. 마다바의 서쪽인 느보산 지역은 사해의 북동지역과 여리고를 볼 수 있는 산으로, 모세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모세기념교회가 복원공사 중인데 성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지원받아 건립중이라고 한다. 이 수도회가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하나님도 모르실거라는 소문이 있다고도 한다! 입장료 1디나르를 내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복원현황과 이 곳에서 발견된 이런저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임시박물관이 있었고, 모세가 멀리 여리고와 가나안 땅을 바라본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도 올라보았다. 왼쪽으로 사해의 일부와 오른쪽으로 여리고가 멀리멀리 보였다. 신명기를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모세가 이곳에 앉아 약속의 땅을 멀리두고 보면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그 장면. 억울하지 않았을까, 그 긴 시간을 광야에서 고생하다가 이제야 다 왔는데, 너는 못 간다고 하는 하나님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이 곳에서 모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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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꼭대기에는 놋뱀 조각상도 정말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광야방랑기의 놋뱀사건. 모세를 원망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로 인해 불뱀에 물려 죽은 사건의 상징물(민 21:6-10)이다. 놋뱀을 신성시해서 올려둔 것 같아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놋뱀사건은 예수의 십자가와 비교될 수 있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놋뱀을 보는 사람마다 다 살았다는 말을 본다면.


모자이크 지도의 교회, 성조지 교회

 
성조지교회는 모자이크 교회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 요르단과 시리아까지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을 그린 지도가 교회 바닥에 그려져 있어 유명하다. 성 조지 교회는 고대 교회터 위에 1896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이 교회에 있는 모자이크 지도는 AD49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1894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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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에 갈등이 생기자 기독교인들이 오스만 터키 정부에게 마다바로 이주할 수 있도록 청원했고, 오스만 정부가 이주를 허락하면서 교회는 옛 교회터에만 지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이주해온 기독교인들이 교회터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이 모자이크 지도를 발견했다고 한다.일부 손상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오랜 세월 제 색을 잃지 않고 이어온 모자이크를 보니 당시 이 모자이크를 만든 장인들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어로 지명이 쓰여져 있어, 교회 안에서는 그저 봄이가 알려준 요단강이나 사해, 예루살렘의 모습만 알아볼 수 있었다. 6세기이전의 팔레스타인 지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교회 주변에는 모자이크 상점이 즐비한데,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봄이가 잘 아는 곳이 있어서 갔다가 십자가 모자이크를 구입했다. 알알이 색돌을 놓던 그 장인들의 손길들을 생각해보면서.

 봄이 일하는 가이드 모임이 있어서, 비행기표 컨펌도 할 겸 함께 갔다가 저녁에 봄이와 사진을 정리하며 지난 여정을 돌아보았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여정. 마음은 고요해진다. 다시,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뭔가를 틀 안에 가두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틀에 가두는 분이 아니다. 여정 내내 보고 느낀 것은 내가 믿는 말씀과 하나님이었다. 외로움에 나를 자꾸 코너로 밀어넣었던 것, 급박하게 모든 것을 지켜보려했던 행동들을 돌아보면서 말씀의 현장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외로움과 자기를 코너로 몰았던 급박함은 말씀이 그 분이 주신 마음이 아니었다. 힘을 얻고 싶었다면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나를 고백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어쩌면 그 사실을 알려주시려고 이 먼 곳을 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행동으로 인정받고 싶어했다. 아니다. 행동이 아닌 마음이다. 내 마음의 게으름을 깨고 그 분을 만나야 내 행동의 게으름이 깨질 것이다.

또 한 번, 새로운 흐름이 내게 생기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