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박김혜정님은 부산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의 활동가이며, 2005년 발간된 성매매 여성들의 수기집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를 기획, 편집했습니다. -편집자 주)
한국 사회에도 성매매합법화와 성매매 여성의 노동자성을 인정해달라고 주장하는 성매매 여성들이 등장했다. 평택 지역 성매매 여성들은 업주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이 주체가 되어 성매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조금이나마 마련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상황과 비교해보아도 괄목할 만한 일이고, 환영할 일이다.
물론 성매매 현장에 있는 여성들은 성매매 업주 등 알선자들과 일정한 관계(관리자-피관리자, 동업자, 사용자-노동자 등)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다. 그렇다 해도 이 여성들의 목소리엔 분명 자신의 목소리가 들어 있기에 한국 사회가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금기되었던 성매매 여성들의 소리가 터져 나오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을 그대로 두어달라고 하고, 어떤 여성들은 자신은 노동자이며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여성들은 성매매가 자신에게 폭력이었다며 출구를 찾는다고 이야기한다. 성매매 여성들도 각기 다른 처지와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처지와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그들의 생존, 안전과 직결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쉽게 간과되어선 안 된다.
따라서 성매매가 폭력 혹은 차별이냐, 노동이냐의 문제는 이론이나 이념상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여성들의 현실과, 그들이 권리를 보장받고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보다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을 모색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까지 듣기
개인적으로, 성매매 현장에서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4년 전부터 줄곧 ‘성매매 폭력론 VS. 노동론’의 대립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세우지 못했다. 우리가 성매매 여성을 상담하고 함께 생활한다 해도, 그들의 경험을 그들 자신만큼 잘 알거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가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성매매와 같이 겉으로 보이는 사회와는 유리된 경험, 우리가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도, 간접경험을 할 수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정의를 내리거나 규정짓는 일이 더욱 조심스러운 일이며 조심스러워야 한다.
성매매 여성들을 상담하면서 나는 ‘성매매는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지는 못했지만, 도움을 원하는 성매매 여성들이 현재 겪는 문제들에 대해 개입하고,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면서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성매매합법화를 원하거나 성매매를 다른 직업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여성들도 있었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무척 공감이 갔다. 한 여성은 어린 나이에 성매매 일을 시작하여 빚이 많았고, 술3종 업소에서 호스로 맞아가면서 빚을 갚아나갔다. 그래서 지금은 빚 없이 집창촌에서 일한다. 이제 돈 좀 모아보려 했는데 성매매방지법이 발을 걸어 버렸다. 이 여성의 입장에서는 악법일 수밖에 없었다.
몇 년간 성매매 일을 하면서 빚을 갚았고, 지금은 빚은 없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자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세울 학력도 없고 다른 직장경험도 부족하다. 그런 그녀가 젊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란, 그것도 1~2년의 짧은 지원기간 안에 다른 삶을 선택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이 여성은 자신이 현재 집창촌에서 일하는 것이 ‘선택’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것은 수 년 동안 성매매 현장이 그녀의 젊은 시간과 많은 기회들, 그리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서서히 갉아 먹으면서 내놓은 ‘선택’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여성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상황에서, 성매매 일을 계속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었다.
‘성노동자’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던 또 다른 여성의 경우, 얼른 돈을 모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되도록 빚도 안 지고, 학원도 열심히 다니면서 집창촌 일을 한다. 현재는 업주의 강요는 없고, 성매매방지법이 발효되면서 수입도 5:5로 나누게 됐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항상 당당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이 여성이, 하루는 술을 마시고 말했다. “내 몸이 너무 더럽고 싫다. 손님 받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다. 너무나 힘든 일이다.”
술이 깨면 다시 ‘합리적’인 자신으로 돌아가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야기하지만, 분명 그녀에게 있어서 성매매 일은 다른 직업과는 변별되는 게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이 여성으로 하여금 (타인이 아닌) 자신의 몸을 미워하게 만들었을까. 손님이 아닌, 자신을 더 싫어하게 만들었을까. 자신이 다른 여성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것이 ‘타자화’다
과연 성매매는 무엇인가.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씩 힌트를 찾아나가는 것 같다. 그 힌트는, 바로 여성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작년에 성매매 여성들의 수기집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도서출판 삼인)를 엮으면서, 여성들이 손으로 쓴 원고를 편집자로서 처음 받아들었을 때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지금까지 직접 듣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픈 경험들이 적혀있어 쉽게 읽어내려 갈 수 없었다. ‘휘유~ 휘유~’ 심호흡을 하고 한숨을 쉬어 가면서 원고를 든 손에 힘을 주어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동안 상담을 하면서 많은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것은 정말 여성들의 경험 ‘일부’일 뿐이었다. 그만큼 성매매 여성들의 경험과 생각은 여성들의 마음 속 깊이 묻혀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피상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깊숙이, 정성들여 듣는 것이다. 일부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도 특별한 자세가 요구된다. 그동안 성매매 여성들이 타인들로부터 극도로 ‘타자화’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매매 여성을 특수한 존재로 상정하고,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일상적으로 성매매 일을 하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지만, 어떤 소수의 여성들은 그 일을 다른 노동처럼 해낼 것이고,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전제를 깐다.
극도로 타자화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땐, 그들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고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그 입장이라면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등등, 성매매 여성들의 상황으로 자신을 대입해보며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타인의 언어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된다. 술에 취해야만, 말이 아닌 글을 통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그 얘기들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성매매 여성들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 봤을 때, 성매매 일을 통해 내 몸과 마음이 학대받거나 다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또한 그것이 개개인의 가치관 차이의 문제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깊게 들을수록 그렇다. 그래서 내가 성매매를 둘러싸고 불안한 여성들의 생존권과 미흡한 사회적 지원 등 제도적인 문제들에 대해 인지하면서도, 성매매는 약자에 대한 폭력에 가깝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타자화된 성매매 여성들과 나와의 인식의 거리를 좁히는 일은 형식적인 당사자주의를 외치며 ‘당사자에게 맡겨라’, ‘다른 사람들이 개입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자신의 상황처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다가서려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들의 구체적인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내 일처럼 고민하지 않고서는 성매매 여성들과 연대할 수 없다. 연대는 ‘연대의 말’이나 ‘격려사’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성매매 여성들의 진심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면, 세상이 늘 그랬듯이 타자로 대하지 말고 나 자신처럼 여기려고 노력해보아야 한다. 진정 지금 성매매 여성들의 삶에 지원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또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다면, 삶을 함께 나누고 여성들의 경험에서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