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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

출산준비

by bravoey 2013. 9. 3.

어제 점심, 작은이모와 엄마가 전화를 해서 출산준비를 다 했냐고 물었다. 나 아직 일한다고, 뭘 해야하는지도 잘 모른다고 했더니 줄줄이 뭘 샀냐고 물으시는데 잘 모르겠어서 멍하니 듣기만 했다. 뭘 그렇게 많이 사야해? 라고 묻자 한 달 전부터 준비해 놓는데 넌 여태 뭐했냐며 잔소리 폭탄.^^ 멀리 있어서 챙겨주지 못해 답답한 이모와 엄마의 마음이 잔소리로 이어지자 왠지 짜증도 나 일단 끊으라고 하고 밥 먹고 와서 다시 찬찬히 통화를 했다.

통화 결과, 이미 주변에 준 것들이 차고 넘쳤고 아기옷 삶고 빨아놓기만 하면 되었다. 몇개 살 것도 있긴 하지만 사는 게 100일 걸리는 일도 아니고 잘 적어놓고 주문하거나 사면 되는 일 아닐까 생각하며 인터넷에서 출산용품 준비물 리스트를 찾아 찬찬히 적어보았다. 

다 적어보니 필요한 건 참 많았다. 좋은 것으로 사려면 돈도 많이 들고. 잘 얻어쓰고 선물해달라고 요청해보고(아, 후원요청.. 직업병ㅋ) 꼭 필요한 것인지 정보도 찾아보고 하면 뭘 그렇게 많이 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제 임신 37주. 이제 아이가 나와도 이상할 것 없는 시기에 들어섰다.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출산준비는 뭘 사고 마련해놓는 것 보다는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임신기간동안 진지하게 고민해보자였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 대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이에게 세상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며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이 사회가 자꾸 정의롭지 못한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라고 말해줘야 할지 생각하며 성경이나 권혁범, 강수돌, 김종철 샘의 책들도 다시 뒤적거렸다. 물론 답이 나오진 않는다.^^ 나는 그저 고민만 할 뿐. 
당장 아이를 출산하는 엄마의 몸 마저 통제당하는 것이 당면한 현실이었으니,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당장 아이가 나와서 뒤집고 서고 싸는 것을 잘 지켜보고 알려주는 것도 고민이지만 그건 아이가 커가면서 스스로 하는 것이지 절대로 내가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난 도울 뿐이다. 하지만 아이가 뭔가 사회로 눈을 돌렸을 때 맞이하게 될 현실은 아이가 스스로 체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을 것 같고, 그런 현실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채 살아가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작게 내 놓은 답들은 아이가 선택하게 해 주자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할 줄 알도록 도와주자는 것, 글을 읽게 되면 고래가 그랬어를 읽게 해주자는 것, 무엇보다 내가 늘 깨어있는 엄마가 되자는 것 등등. 그리고 이 고민을 늘 놓지 말고 살자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