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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ist/불편한 육아생활

천기저귀 라이프

by bravoey 2013. 11. 29.

담영이 인생 한 달째부터 사용해온 천기저귀.

 

출산 준비 할 때부터 천기저귀를 10장 사두긴 했는데 어떻게 써야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출산하니 천기저귀는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힘드니 내 손으로 뭘 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양심에 마구 찔리지만 몸 풀릴 때까지만 눈 딱감고 쓰자! 선물 받고 사둔 일회용 기저귀를 열심히 사용하고, 한달쯤 되었을 때 담영아빠가 중소기업박람회에 직장일 때문에 며칠 가있었는데, 하필 바로 옆이 라쥬아(전 자운영)였고 어찌어찌 싼 값에 기저귀 20개와 커버, 깔개 등을 구입해 왔다. 천이 보드랍고 주름이 들어가 있어서 덜 샐 것 같아 보였다. 아기 살아 닿아도 괜찮을 것이고, 무엇보다 종이기저귀를 쓰면서 느꼈던 양심의 가책을 덜 수 있었다!

 

 

그 놈의 양심의 가책이 왜 드냐면, 종이 기저귀는 일단 쓰레기이기 때문이다. 재활용이 안된다는 말이다. 종이 기저귀는 분해되는데 150년 이상 소요될 정도로 잘 썩지 않기 때문에 지구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펄프로 만들기 때문에 나무들의 희생(?)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천 기저귀를 사용할 경우 한 아이 당 72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수고로운 천기저귀

 

양심의 가책을 털고 사용하기 시작한 천기저귀는 일단 '불편'하다. 잘 샌다. 종이기저귀처럼 호소솝 흡수하는 것이 아니다. 오줌을 싸면 기저귀가 축축해져 있고, 많은 변을 보면 백프로 샌다. 또 빠는 게 장난아니다. 애벌빨래를 해줘야 해서 물을 많이 쓰게 된다. 우리 집 수도세가 천기저귀 쓴 후로 바짝 늘었다. 외출해서나 밤에는 쓰기가 좀 어렵다. 아이도 나도 자고 있는데 변을 쭈루룹 봐 주시면 자던 곳에 참극이 벌어지고, 외출 시에는 옷을 몇 개나 싸가야 가능할 것이다. 쉽지 않다. 천기저귀 안 쓰는 이유, 정말 공감 100%다. 수고롭기 짝이 없다.

 

그런데, 불편의 이면에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들도 존재한다. 

기저귀에 대한 아이의 반응이다. 종이기저귀는 오줌을 몇 번이나 싸고 대변도 크게 한 번 빵 터트려 주셔도 아이가 잘 모른다. 잘 모르게 되면 아이의 고운 엉덩이에 불긋불긋 발진이 생기게 된다. 암모니아, 독한 놈이거든. 여성들이 생리대의 흡습제와 표백제 때문에 천 생리대를 쓰듯, 아이들 기저귀도 흡습제와 표백제가 들어간다. 이 놈들도 장기적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놈들은 아니다. 그것도 장기와 살, 다 새 것인 아이들에게 좋지 않을 것이다. 담영아빠도 한참 종이기저귀 쓸 때 애 엉덩이 울긋불긋 발진을 보고 헉 하더니, 기저귀 파는 언니들이 흡습제 얘기하자 마음의 결심을 하고 천기저귀를 지르신 것 같다. 종이기저귀와 달리 천기저귀는 반응이 즉시 온다. 오줌 한 번만 싸도 으엥, 대변은 그 표적(?)을 자동으로 보여주시니 즉시 교환! 아기 엉덩이 짓무르거나 발진 걱정은 없다.

 

천기저귀 차면 엉덩이가 이만해진다^^

 

장난 아닌 빨래. 처음엔 담영아빠가 그랬다. 자기가 다 빨겠다고. 혹시 이 글 보는 엄마들 중에 아빠가 그런 이유로 천기저귀 사오면 믿지 마시라. 그럴 수가 없다. 물론 집에서 쉴 때는 빨아주시지만, 다 빨 수는 없다. 흥.

천기저귀를 빨 때 세제나 물 사용도 환경에 좋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쓰레기가 되어 대기오염, 땅오염, 나무 없애는 종이기저귀보다 천기저귀가 낫다고 본다. 물은 다시 사용할 수 있고 세제는 골라쓰면 된다.

물은 아기 목욕물을 활용하고 있다. 씻기고 헹구는 물을 대야에 받아서 쓰는데 요걸 버리지 않고 뒀다가 기저귀 빨래 할 때 다시 쓴다. 욕조 한 칸에 잘 모셔두면 된다. 애벌빨래할 때 쓰고, 아기세탁기에 돌릴 때 이 물을 세탁기에 들이 붓는다. 세제는 베이킹소다면 된다. 때 잘 빠진다. 다섯스푼 넣고 기저귀 다 돌리면 때도 잘 빠진다. 먹는 것이어서도 유해하지도 않고 물에도 잘 풀린다. 옷감에 잘 남을리도 없다. 아주 수고스럽지만, 자신이 무척 부지런하고 깨끗하다는 자부심도 보너스로 생긴다. 물론 이건 스스로 위안삼는 것이다. 집에서 애만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자부심이 정신건강에 참 좋더라.

 

 

밤잠 잘 때는 어떡하는가! 외출 할 때는 어떻하는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종이기저귀를 쓴다. 담영이가 요즘 밤에는 소변만 보시어, 천기저귀를 채워볼까 생각중이다. 담영이가 아직 밤에 젖을 먹기 때문에 침대에서 같이 자는데, 천기저귀 차고 같이 주무셨다가 큰 똥 한번 날렸다가는 침대를 통채로 빨아야 할지도 몰라서 쉽지가 않다. 침대를 어디다가 버릴 수도 없고. 요즘에야 내가 이 침대를 왜 샀나 후회하고 있다. 외출할 때가 제일 어렵다. 나름 환경단체 활동가신데, 물티슈에 종이기저귀 챙겨다니는 꼴이. 고민고민고민 좀 해보려고 한다. 더 불편해질 용기가 필요하겠지.

 

종이기저귀와 함께 쓰이는 대표적 육아용품이 '물티슈'다. 육아박람회 가면 엄마들 선물로 물티슈를 가장 흔하게 주더라. (난 안가봤지만 어디 글 보면 그렇더라) 종이기저귀 쓰면서 엉덩이 다 물로 씻어주는 엄마들도 있지만 대부분 물티슈로 쇽쇽 닦아준다. 물론 나도 아직 쓰고 있다. 물티슈 또한 천연펄프라 양심의 가책이 엄청난 품목 중 하나다. 하지만 천기저귀 쓴 이후로는 확실히 덜 쓰고 있다. 아이들이 쉬나 응아를 하면 기저귀를 몽창 다 적시는 게 아니다. 한 부분만 적신다. 깨끗한 다른 부분으로 엉덩이를 닦아주면 물티슈 안써도 되더라. 대참사의 경우는 씻어주지만 작은 참사의 경우, 기저귀로도 해결이 된다. 담영이 탄신 후 한달 동안 물티슈 60매 짜리 10개를 다 써버렸는데, 천기저귀로 바꾸고는 한달에 70매짜리 3통 정도 밖에 안썼다. 외출하느라 쓴 것 빼고는 그나마 요즘엔 하루에 한개도 안쓸 때가 있다.

 

결국은 엄마의 선택, 하지만

 

 

 

이런저런 글들을 보면 천기저귀가 아이에게 더 안좋다는 엄마들의 사례도 있다. 천기저귀가 젖어있기 때문에 아이피부가 금방 반응한다는 점, 세제 쓰면 그런거나 저런거나 다 환경에 안좋은 거 아니냐는 의견도 본다. 무엇보다 엄마가 힘들면 아이에게도 좋은 기운을 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기저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기저귀를 쓰며 행복해질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일을 할 때 그런 말을 쉽게 들었다. 너희가 환경운동한다는데, 전기도 안쓰고 물도 안쓰냐. 먹는 건 다 유기농만 먹냐. 자동차도 안타고 다니냐. 도시에서의 환경운동은 그렇다. 어떻게 차를 안타고 현장에 가고, 전기를 안쓰고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회원들이 사다주는 간식들, 유기농 아니니 안 먹습니다 이럴 수 없다. 우리는 지향하는 점이 있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최선을 다해 지향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도시에서는 있다. 기저귀의 문제는 결국 엄마의 선택인 것 같다. 천기저귀 쓴다고 좋은 엄마, 그런 거 아니다. 천기저귀 쓰면서 다른 면에서 일회용 쓰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지향'하는 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에게 정말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서 하는 여러가지 선택이 있다면 그 대전제를 '아이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터를 위한' 선택이면 좋겠다. 당장 아이에게 좋은 것 먹이고, 입히는 것보다 더 크게, 아이가 살아야 할 세상의 건강함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도시에서 살아가니 더더욱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금 수고롭고 불편하더라도 지향하는 점에 맞도록 생활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천기저귀를 지향하는 것은 건강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작지만 큰 걸음일 수 있다. 그래서 엄마들이 천기저귀를 더, 선택해주면 좋겠다.

 

 

** 천기저귀 쓰는 거 정리하려다 뭔가 마무리가 요상하게 되었네. 혹시 이 글 보신 분들 중에 외출과 밤잠에도 천기저귀 쓰는 사례 있으신 분들 답글 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