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부끄럽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무엇이든, 적당히 하고 변명을 하고는 마무리짓는다.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고, 남에게 미루기도 한다.
최근에 나는 이런 습관이 꽤 오래 내게 남아서 이제는 그게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스물 아홉, 손에 쥔 것 아무것도 없는 내 삶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것을 쥐고 살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하는 일 하나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매번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꽤 한심스럽다.
가끔 삶의 고삐가 내가 아닌 타인, 혹은 시간에 쥐어진 것을 본다.
나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삶을 정리하고 살아가지 못할 때, 나는 몹시 불안하다.
시간이 촉박한 어떤 일에, 타인이 시키는 일에 휘둘려 어느 덧 가버린 시간을 느낀다.
지난 주 예배시간, 내 머리 속에는 이런 말이 떠올랐다.
예수가 진정으로 너의 왕이냐고.
그 말이 떠오른 순간 나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예수의 십자가가 인생의 전체라고 생각하던 내 삶은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는지, 나는 무슨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나를 대하고 있었는지 돌아볼 겨를도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가면 가는대로, 예배를 드리면 드리는대로 그렇게 보내고 있는 모양이 얼마나 그 분께 죄송했는지.
묵자의, 나를 부린다는 말을 생각해본다.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끊임없이 내 삶을 고민하고 수정해야 할 것이다. 지쳐도, 피곤해도 계속, 그렇게 가야할 것 같다.
고민할 때마다 너무 많이 흘러버린 시간이 너무 야속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아직이라는 말을 뱉어낸다.
그래도 아직이다. 아직, 다시 갈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반드시 그 분이 원하시는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하실테니까, 나는 그것을 믿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