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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 정윤천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아도 사랑이다. 어느 길 내내, 혼자서 부르며 왔던 어떤 노래가 온전히 한 사람의 귓전에 가 닿기만을 바랐다면, 무척은 쓸쓸했을지도 모를 서늘한 열망의 가슴이 바로 사랑이다. 고개를 돌려 눈길이 머물렀던 그 지점이 사랑이다. 빈 바닷가 곁을 지나치다가 난데없이 파도가 일었거든 사랑이다. 높다란 물너울의 중심 속으로 제 눈길의 초점이 맺혔거든, 거기 이 세상을 한꺼번에 달려온 모든 시간의 결정과도 같았을, 그런 일순과의 마주침이라면, 이런 이런, 그렇게는 꼼짝없이 사랑이다. 오래전에 비롯되었을 시작의 도착이 바로 사랑이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손가락 빗질인 양 쓸어 올려보다가, 목을 꺾고 정지한 아득한 바라봄이 사랑이다. 사랑에는 한사코 진한 냄새가 배어 있어서, 구름에라도 실.. 2011. 9. 6.
추억의 묶음 : 나태주 꽃이 있기는 있었는데 여기 여린 바람에도 가들거리고 숨결 하나에도 떨리우고 생각만으로도 몸을 흔들던 꽃이 있기는 있었는데 여기 집을 비운 며칠 사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꽃은 향기로만 남아 흐릿하게 눈물로만 남아 비릿하게 혼자 돌아온 나를 울리고 또 울린다 ---시와 시학 2005년 여름호 꽃이 있던 자리의 뿌리 자리가 흔적이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 나도 알 수 없는 그 힘. 아마도 그 힘은 혼자이고 자취도 없는 그대를 향한 눈물. 눈물이 생겨나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그 한 줌의 힘인 듯. 2011. 9. 6.
오, 계절이여  1. 꿈에 붉은 매화를 보았다. 내 손 안에 몰래 들어온, 그 가느다란 가지에 분홍빛 꽃 몇 송이. 나를 잡아주면 좋겠다고 주저없이 말하는 듯 했던 그 매화꽃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은 가난하고 어두웠지만, 매화의 붉은 빛은 밝았기 때문이다. 나는 꿈처럼 그 붉은 빛을 보았다. 도무지 현실에서는 잡아볼 수 없었기에. 그리고 내 삶의 여름은 지난 뒤였다. 2.  립스틱을 하나 샀다. 대학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밝은 오렌지색을 샀다. 마음이 밝아졌으면 했다. 별 효과는 없었다. 다만 하루종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나마 그거라도 지워질까봐. 미움과 그리움은 그래서 내 목소리로 변하지 못하고, 거기 머물러 있다. 그렇게 가을을 맞이할 생각이다. 3. 오 계절이여, 오 성.. 2011. 9. 5.
선생 이제 '그 분이 찾아오기만 하면' 너는 화룡점정을 할 수 있을 듯하다. 계속, 무소의 뿔처럼 그 길을 가거라. 선생이란, 먼저 태어나서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선생의 중요한 조건은 믿음이다. 제자에게 지속적인 믿음을 보내주는 이, 그것이 선생이다. 지독하게 제 고집 부리며 제자리를 못 찾는 제자에게 지독한 믿음을 보내주시는 선생이 있다는 것이 참 눈물겨운 오늘이다. 고맙습니다, 진심을 다해. 당신이 준 내 어깨의 짐을 꼭 덜어내겠어요. 2011. 8. 18.
꿈과 모기 1. 꿈에 100명은 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는 요즘이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꿈에 등장해서 이런소리 저런소리를 요란스럽게 떠들어대고, 나는 뭔가를 하기 위해 그 사람들과 대화하고 머리를 굴린다. 그 일의 끝에서는 내가 지금 뭘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특히 사람이 모이는 것,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나는 늘 내 운동에 사람이 한가득 모이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요즘처럼 그 일이 어렵구나 절망하는 시기도 없는 것 같다. 인원모집의 걱정을 떠나 왜 사람들이 호응하지 못하는 일을 기획하고 벌리는지를 절망한다. 공채도 내고 소모임은 두개나 내 손에서 돌아가고 있고, 프로그램도 만만치 않다. 모두 사람이 꼬치처럼 엮인 일이다. 넋이 잠시.. 2011. 8. 17.
금각사 오늘 아침, 금각사의 마지막 장을 다 읽고야 말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내 머릿속은 텅 빈 듯하다. 첫 장을 열고, 버릇대로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다가 결국 연필을 던져버렸다. 줄을 그어야 할 문장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지 그 맛이 느껴졌다. 후루룩 스토리만 읽어나가는 소설이 절대로 아니다. 저 바락스럽게 생긴 얼굴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이 새겨졌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이 작품을 몇 번이고 읽었다고 하는데, 그럴만도 하다. 그리고 그의 문장도 미시마의 문장을 닮아있다. 고르고 섬세하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문장 이상을 아직 모르겠다. 솔직히 작가가 숨겨놓은 연결고리도 발견하지 못한채 문장만 만지고 끝에 와 버린 기분이라서, 뭐라고 더 쓸 말.. 2011. 8. 13.
아, 흙 한줌, 흙 한줌씩만 -왜 김진숙을 살려야 하는가 누를 수 없을 만치 끓어오르는 한마디가 있어 붓을 들었습니다. 저는 입때까지 있어온 ‘희망의 버스’를 세 번 다 탔습니다. 다짐했던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김진숙을 살려내자, 그 한마음일 뿐, 갖고 간 것은 흙 한줌이었습니다. 아내가 무엇 하러 그런 걸 갖고 가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말을 안 했습니다. 높은 무쇳덩이에 216일째 올라 있는 그에게 뿌리를 내릴 흙 한줌을 보태자 그거였지요. 하지만 한 번도 주진 못했습니다. 1차 때는 허리춤에 찼다가 경찰 방패에 떨어뜨렸고, 2차 때는 부산역에서 영도까지 모진 빗속을 걷다가 홀랑 젖어버렸고, 3차 때는 영도다리에서부터 막혀 뚫다가 짓이겨졌고. 그래도 그날 밤 8시부터 3시간 반 동안 꽝꽝 막힌 영도의 골목골목을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죽어라고 걸어 마.. 2011. 8. 10.
열외인종잔혹사 강물에 발목까지 담근 기분이랄까. 강물로 확 뛰어든 것이 아니라 발목까지만.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뭔가 아쉽지만 어쨌든 물에 발을 넣었으니 시원하긴 하다. 이야기들이 퍼즐처럼 한 곳으로 모여드는 것이 재미있다. 서술자의 조롱하는 듯한 차가운 문체는 모두 뼈가 있다. 재미있게 말하는 이야기꾼이다. 삼성역 코엑스몰에 양머리들이 출몰하고, 네 명의 주인공들이 그곳에 운명인지 필연인지 모를 사연들로 모이게 된다. 네 명의 주인공들을 작가는 이름 붙이길 '열외인종'이라 했다. 네 명의 주인공은 지독하게도 이기적이고, 끝까지 이기적인 인물들이었다. 사람들이 양머리들에게 희생되는 순간에도 윤마리아는 양머리두목의 정체가 '론'본부장인지가 중요했고, 장영달은 자기가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본능을 포기하지 않는 .. 2011. 8. 9.
대구 경전철 현장에서 보는 '대전 경전철'의 미래 지난 7월 21일(목)에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대구 경전철 건설 현장조사를 다녀왔습니다. 현재 대전시가 추진중인 대전 고가 경전철이 대전시민의 생활공간을 어떻게 차지하고, 어떤 피해를 줄 것인지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현장조사였습니다. 이 날 현장조사에는 최정우 목원대 도시공학과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와 시의원, 대전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지역기자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2011.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