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268 김소진-함정임 헌책방을 전전하며 책을 사모으던 휴학생 시절. 솔출판사에서 나온 김소진의 소설집 두 권을 구하고는 이게 왠 횡재냐고 박수치며 아르바이트를 갔었던 기억이 있다. '눈사람 속 검은 항아리'을 통해서 만났던 그의 소설들이 내게 소설쓰기에 대한 다른 감회를 던져주었던터라 더욱 반가웠다. 딱 이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손 끝에 문장들이 덕지덕지 붙어 쏟아내기 바쁜 내 수준에는 아직 먼 길처럼 보이지만. 아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좋은 작품들을 더 만날 수 있었을텐데. 그의 아내가 함정임 이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함정임의 소설은 김소진과는 정말 달랐기 때문이다. 은 아직도 인상깊은 작품 중 하나. 아, 어줍잖게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함정임이 남편인 김소진을 추억하는 글을 보았기 때문이고 내 .. 2011. 7. 24.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아프리카 소설을 몇 개 읽어볼 심산으로 둘러보다가 처음 만난 작품. 아프리카 소설이 어떤 식으로 쓰여지는지 접해본 바가 없고, 번역된 문체라는 사실 작품을 대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는 아프리카 탈식민지 시대의 상황을 오콩코 일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나이지리아 이보족이라는 처음 보는 종족들, 그 종족이 가졌던 문화들을 소설을 통해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작품의 본론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꽤 뒤에 가서야 나타나는데, 영국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선교'라는 이름으로 침입하면서 고유의 문화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교회와 법을 요구하는 부분에서는 분노가 치밀 정도였다. 서양의 방식은 인간이든 자연이든 빠르게 대상화하고 정복하려 했던 것 같다. 문화를 정복하고, 파괴하는 방법은 식민지를 다루는 강국들이 자.. 2011. 7. 22. 철수사용설명서 세장쯤 읽었을 때였을 것이다. 제길, 잘 썼네. 이 말이 툭 튀어나왔다. 문체는 더 없이 간결하고 핵심적이다. 당연하다. 사용설명서에 형용사나 부사는 필요없다. 철수는 가장 보편적인 이름이자, 보편적인 인물로 설정되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려고 사용설명서를 수도 없이 구해 읽었다던데, 문장은 그 느낌을 잘 살려냈다. 철수에 대해 알아갈수록 슬퍼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그건 바로 아래의 문장을 접했을 때다. 가끔씩 철수는 사람들이 망가진 제품을 만나길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자신은 상대적으로 정상이 될 수도 있으니까 (58p) 철수의 행동이 우스꽝스러워 질 때마다 마음으로 안도하는 나 자신을 봤으니까. 그래, 철수 같은 사람 세상에 많지. 바보같이, .. 2011. 7. 22. 기다린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진정으로 안다는 것. 삶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과 같은 것. 더 이상 호기심으로 두리번 거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기다릴수 있다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기다린다는 것은 자신이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 산도르 마라이 중에서 버리려고 털어낼수록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분명히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아무 말도 없는. 이제 부르지도 못하고 침묵하도록 만드는. 2011. 7. 21. 7월 15일, 새벽녘에 내가 아직 너의 문간에 이르지 못했으니 이곳에서 그냥 밤을 새고 말리라 오늘 하루 얼마나 걸었을까 지는 해의 부르튼 발바닥이 보여 문을 잠근 그대여 너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을 테지 이 길의 두근거림 가도가도 계속되는 흰 꽃들의 속삭임 가만히 주저앉아 쓰다듬어 보면 종일 햇볕이 데우지 않았어도 수많은 발길로 뜨거워진 길 긴 가뭄에도 땅 속으로 뻗는 저 알알의 힘 너는 아직 모르고 있을 테지 간간이 한 줌의 굴욕 한 줌의 신산한 기억들도 흰 감자꽃 속에 널브러져 있지만 길을 따라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들 너는 아직 손 잡아보지 못했을 테지 문을 잠근 그대여 나는 아네 언젠가 내가 너의 문간에 이르렀을 때 너무 단단히는 잠그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삐걱거려 주리라는 것을 끝끝내 열리지 않아 그곳에 나의 무덤을 .. 2011. 7. 16. [동영상] 절단난 4대강 침산보 2011. 7. 13. 나를 보내지 마 처음 읽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단순히 클론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SF류를 기대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작품이다. 틀을 뒤집는다는 건 이런게 아닐까 싶었다. 작가는 뒷짐을 지고 장기기증을 목적으로 교육되는 해일셤의 아이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주인공(루스, 캐시, 토미)들은 소설에 등장하는 기증, 일반인, 장기 등의 단어가 없다면 평범한 아이들처럼 보인다. 지루하다싶게 소소한 주인공들의 이야기 저변에는 말해도 안되고, 베일에 싸인 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깔려있다. 그 불안함이 지루한 이야기들을 자꾸 읽어나가게 한다. 그래서, 그래서 얘들은 어떻게 되는거야?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랐을때, 장기기증을 하면서 인간들의 잔인함 등을 기대했을때, 작가는 기다렸다는듯이 클론들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 2011. 7. 13. 가라앉다 1. 그 목소리를 듣고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다. 줄곧 생각하다가 갑자기 들려와서 체한듯 눈물을 쏟아냈다. 반복되는 마음의 파도, 멀미가 끝이 없다. 2. 나에게 그래도 된다고 누가 그랬을까? 칼을 든 것은 당신이고 상처를 내는 것은 우리다. 서로 모른채로 칼부림을 하고 있다. 내가 더 아프다. 시간 속으로 기억이 사라지길 바란다. 질기다, 이 마음. 3. 가라앉고 싶다. 깊이, 아무도 모르게. 2011. 7. 12. 쓰고싶다 1. 하얀 연습장을 몇 분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써보겠다고 펴들었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왜 쓰는가. 이 질문만이 머리에 뱅글뱅글 돌았다. 그 질문에 나는 삶으로 대답해 왔다고, 매년 소설을 쓰고 내면서 그 답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 시간에도 나는 왜 쓰느냐고 나에게 묻고 있다. 내가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와 함께 숨쉬는 인물들이 있다. 아직 형태가 구체적이지 않은 이들은 머릿속을 뛰어다니며 이야기줄을 이어간다. 어느 때는 내 손을 잡아끄는 것 같다가도, 내가 막상 손을 잡으면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진다. 그 질문, 내가 왜 써야되?, 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들은 사라진다. 미칠 노릇이다. 2. 집에 도착하면 스탠드를 켜고 소설책을 펴든다. 활자들.. 2011. 7. 10. 이전 1 ··· 27 28 29 30 31 32 33 ··· 14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