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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 2011. 10. 23.
제자리로 * 쌓이는 일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나와 삼일을 여인숙 생활. 옷에서는 여인숙 냄새가 나고, 머리는 이제 용량초과로 멍해진 상태다. 야근생활 한 달째. 일주일간 어지럽더니 이제는 땅이 도는지 내가 도는지 모르겠다. 이제 집에 간다. 가서 옷을 벗어던지고 깊게 잠들고 싶다. **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대를 알기 전으로, 더 오래 전으로. 흐트러진 마음 사이로 또 '졌다'는 생각이 들어 와락 정신을 차렸다. 바닥까지 떨어지면 그제야 정신이 든다. 정신은 들었지만 마음은 사막이다. *** 사막에도 꽃이 필 줄 알았지. 잠시. 2011. 10. 22.
소비 1. 내가 함께 했던 누군가가 유령처럼 느껴진다. 그 시간들도 기억 속에서 흐려질 것 같다. 그러다 금방 사라지면 좋으련만. 무엇이든 잊혀지는 것에는 시간이 든다. 2. 엄마는 할머니를 기어이 데리고 왔다. 치매인 두 노인을 수발하는 엄마가 기가 막히지만, 내가 달리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부모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자식이 대신 져보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게 슬프다. 부모는 외로운 존재. 3. 마음을 쓰고, 몸을 쓰니 며칠 째 어질어질하다. 아직 두 주나 더 남았는데, 죽을 것 같다. 마음 쓸 일이나 없으면 좋겠는데, 참 때도 잘 맞췄지. 힘이 드는구나. 2011. 10. 17.
에콜로지카 정치적 생태주의라는 낯선 말을 접했다. 퇴로의 길을 걷고 있는 자본주의를 넘어서 어떤 방향으로 우리 삶과 사회를 바꿀 수 있냐는 질문에 앙드레 고르는 그 낯선 단어를 제시한다. 탈성장은 살아남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그의 말처럼 기후변화는 이제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고, 생존하기 위해 더 이상 성장만을 부르짖을 수 없다. 지금과는 다른 경제, 다른 생활방식, 다른 문명의 필요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 이가 많지 않다. 그저 멈춰야 한다는 질문과 그래도 아직 괜찮다는 낙관론 사이에서 물음표만을 던질 뿐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노동자들이 생산과 소비자로서 분리된 것으로부터 시작해 생산자로서 자기가 생산할 양, .. 2011. 10. 13.
나는 살고 싶어요 2011. 9. 27.
현(絃) 1. 얼마전 첼로 현(絃)을 만지다가 낭패를 봤다. 어설픈 튜너로 음을 맞추려다 보니 다 헝클어져 버렸다. 처음부터 맞출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연습해 보려고 했지만, 영 달라진 음에 첼로를 다시 넣었다. 작은 변화에도 현은 금새 음을 잃는다. 현이 헝클어진 채로 그냥 연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사는 모양도 그런 적이 많았다. 헝클어진채로 그저 달려가는. 그러지 말걸. 2. 튜너와 메트로놈 기능이 있는 튜너를 큰 맘 먹고 구입했다. 똑딱똑딱 메트로놈은 규칙적인 소리를 냈다. 이제 나는 그 규칙에 맞춰 현 위에서 놀면 되는 일이다. 생각만큼 쉽지 않지만 정말 자유롭게 현 위에서 놀고 싶다면 규칙을 익혀야 한다. 규칙이 몸에 익으면 뛰어넘는 건 쉽다. 규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규칙이 능숙해.. 2011. 9. 23.
밤, 불꽃 누가 슬픔의 별 아래 태어났으며 누가 슬픔의 별 아래 묻혔는가. 이 바람 휘황한 高地에서 보면 태어남도 묻힘도 이미 슬픔은 아니다. 이 허약한 난간에 기대어 이 허약한 삶의 규율들에 기대어 내가 뛰어내리지 않을 수 있는 혹은 내가 뛰어내려야만 하는 이 삶의 높이란, 아니 이 삶의 깊이란. - 최승자 시 ----------------------------------------- 당신도 보았는가. 불꽃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있는 것을. 2011. 9. 15.
명절 전 사무실 창문 밖으로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욕과 고함이 오간다. 어릴 적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소리. 단지 소리만 들어도 그 때처럼 답답해진다. 명절이라 그럴까. 집으로 간다는 건, 그 지긋지긋한 과거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아서 매년 내키지 않는다. 사무실은 조용하다. 어둠이 오는 소리와 함께. 2011. 9. 9.
1. 나를 패배하게 만드는 것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졌다'는 생각에 내 삶의 흐름을 흐트러뜨리는 것이다. 내 마음의 본질을 더 생각하지 않으면 자꾸만 삶은 흐트러진다. 패배자처럼, 울고 망설이고 두려워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자꾸 미련을 두고 바꾸고 싶어 뭔가 하려고 한다. 뭔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억울하고 아픈 것이다. 머리에서는 아니라고 하는데 마음은 자꾸 반대로 가니까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몸이 틀어지고 마음이 흐트러진다. 그렇게 바닥까지 감정을 내동댕이치고 나면 방 안의 어둠에 모든 생각이 사라진다. 어제처럼, 차라리 마음이 없으면 좋을 것 같아 방 안 어둠에 눈물과 생각을 미친듯이 뿌리고 나면 그렇다. 졌다. 그렇지만 이기려는 과정.. 2011.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