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373 알 수 없는 1. 한 때는 기쁨이었던 것이 지금은 슬픔이 되는 것. 그러니 기쁠 때는 기뻐하고, 슬플 때는 돌아보라. 인생의 앞 일은 누구도 알 수 없으니. 누구도 알 수 없으니. 2. 대차게 울어제끼니 부끄럽지만 직성은 풀렸다. 어쩔 수 없다. 겁나게 찌질하게 밀어붙이고 나가떨어져야 직성이 풀리니, 네 년의 팔자다. 일단 직성이 풀릴 때까지 살아보겠다. 닥치고. 마음이 홀로 앞선 것을 진작 잘 알았더라면. 내탓이다. 3. 하루키의 를 집어들었으나 예전같지 않다. 내가 변한 건지, 하루키가 변한건지. 상실의 시대여 돌아오라. 2011. 10. 31. 제자리로 * 쌓이는 일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나와 삼일을 여인숙 생활. 옷에서는 여인숙 냄새가 나고, 머리는 이제 용량초과로 멍해진 상태다. 야근생활 한 달째. 일주일간 어지럽더니 이제는 땅이 도는지 내가 도는지 모르겠다. 이제 집에 간다. 가서 옷을 벗어던지고 깊게 잠들고 싶다. **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대를 알기 전으로, 더 오래 전으로. 흐트러진 마음 사이로 또 '졌다'는 생각이 들어 와락 정신을 차렸다. 바닥까지 떨어지면 그제야 정신이 든다. 정신은 들었지만 마음은 사막이다. *** 사막에도 꽃이 필 줄 알았지. 잠시. 2011. 10. 22. 소비 1. 내가 함께 했던 누군가가 유령처럼 느껴진다. 그 시간들도 기억 속에서 흐려질 것 같다. 그러다 금방 사라지면 좋으련만. 무엇이든 잊혀지는 것에는 시간이 든다. 2. 엄마는 할머니를 기어이 데리고 왔다. 치매인 두 노인을 수발하는 엄마가 기가 막히지만, 내가 달리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부모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자식이 대신 져보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게 슬프다. 부모는 외로운 존재. 3. 마음을 쓰고, 몸을 쓰니 며칠 째 어질어질하다. 아직 두 주나 더 남았는데, 죽을 것 같다. 마음 쓸 일이나 없으면 좋겠는데, 참 때도 잘 맞췄지. 힘이 드는구나. 2011. 10. 17. 현(絃) 1. 얼마전 첼로 현(絃)을 만지다가 낭패를 봤다. 어설픈 튜너로 음을 맞추려다 보니 다 헝클어져 버렸다. 처음부터 맞출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연습해 보려고 했지만, 영 달라진 음에 첼로를 다시 넣었다. 작은 변화에도 현은 금새 음을 잃는다. 현이 헝클어진 채로 그냥 연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사는 모양도 그런 적이 많았다. 헝클어진채로 그저 달려가는. 그러지 말걸. 2. 튜너와 메트로놈 기능이 있는 튜너를 큰 맘 먹고 구입했다. 똑딱똑딱 메트로놈은 규칙적인 소리를 냈다. 이제 나는 그 규칙에 맞춰 현 위에서 놀면 되는 일이다. 생각만큼 쉽지 않지만 정말 자유롭게 현 위에서 놀고 싶다면 규칙을 익혀야 한다. 규칙이 몸에 익으면 뛰어넘는 건 쉽다. 규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규칙이 능숙해.. 2011. 9. 23. 명절 전 사무실 창문 밖으로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욕과 고함이 오간다. 어릴 적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소리. 단지 소리만 들어도 그 때처럼 답답해진다. 명절이라 그럴까. 집으로 간다는 건, 그 지긋지긋한 과거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아서 매년 내키지 않는다. 사무실은 조용하다. 어둠이 오는 소리와 함께. 2011. 9. 9. 回 1. 나를 패배하게 만드는 것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졌다'는 생각에 내 삶의 흐름을 흐트러뜨리는 것이다. 내 마음의 본질을 더 생각하지 않으면 자꾸만 삶은 흐트러진다. 패배자처럼, 울고 망설이고 두려워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자꾸 미련을 두고 바꾸고 싶어 뭔가 하려고 한다. 뭔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억울하고 아픈 것이다. 머리에서는 아니라고 하는데 마음은 자꾸 반대로 가니까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몸이 틀어지고 마음이 흐트러진다. 그렇게 바닥까지 감정을 내동댕이치고 나면 방 안의 어둠에 모든 생각이 사라진다. 어제처럼, 차라리 마음이 없으면 좋을 것 같아 방 안 어둠에 눈물과 생각을 미친듯이 뿌리고 나면 그렇다. 졌다. 그렇지만 이기려는 과정.. 2011. 9. 8. 오, 계절이여 1. 꿈에 붉은 매화를 보았다. 내 손 안에 몰래 들어온, 그 가느다란 가지에 분홍빛 꽃 몇 송이. 나를 잡아주면 좋겠다고 주저없이 말하는 듯 했던 그 매화꽃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은 가난하고 어두웠지만, 매화의 붉은 빛은 밝았기 때문이다. 나는 꿈처럼 그 붉은 빛을 보았다. 도무지 현실에서는 잡아볼 수 없었기에. 그리고 내 삶의 여름은 지난 뒤였다. 2. 립스틱을 하나 샀다. 대학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밝은 오렌지색을 샀다. 마음이 밝아졌으면 했다. 별 효과는 없었다. 다만 하루종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나마 그거라도 지워질까봐. 미움과 그리움은 그래서 내 목소리로 변하지 못하고, 거기 머물러 있다. 그렇게 가을을 맞이할 생각이다. 3. 오 계절이여, 오 성.. 2011. 9. 5. 선생 이제 '그 분이 찾아오기만 하면' 너는 화룡점정을 할 수 있을 듯하다. 계속, 무소의 뿔처럼 그 길을 가거라. 선생이란, 먼저 태어나서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선생의 중요한 조건은 믿음이다. 제자에게 지속적인 믿음을 보내주는 이, 그것이 선생이다. 지독하게 제 고집 부리며 제자리를 못 찾는 제자에게 지독한 믿음을 보내주시는 선생이 있다는 것이 참 눈물겨운 오늘이다. 고맙습니다, 진심을 다해. 당신이 준 내 어깨의 짐을 꼭 덜어내겠어요. 2011. 8. 18. 꿈과 모기 1. 꿈에 100명은 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는 요즘이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꿈에 등장해서 이런소리 저런소리를 요란스럽게 떠들어대고, 나는 뭔가를 하기 위해 그 사람들과 대화하고 머리를 굴린다. 그 일의 끝에서는 내가 지금 뭘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특히 사람이 모이는 것,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나는 늘 내 운동에 사람이 한가득 모이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요즘처럼 그 일이 어렵구나 절망하는 시기도 없는 것 같다. 인원모집의 걱정을 떠나 왜 사람들이 호응하지 못하는 일을 기획하고 벌리는지를 절망한다. 공채도 내고 소모임은 두개나 내 손에서 돌아가고 있고, 프로그램도 만만치 않다. 모두 사람이 꼬치처럼 엮인 일이다. 넋이 잠시.. 2011. 8. 17.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4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