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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373

사람들과 집을 깨끗이 청소했다. 방을 둘러보는데 방의 처음모습처럼 너무 깨끗해 흡족해 하면서 내 빈배낭을 매고 그 집을 나섰다. 배낭은 아주 가볍고 깨끗해서 기분좋게 맬 수 있었다. 나오면서 집을 휘 둘러보는 그 마음이 참 산뜻하고 편안했다. 어제 꿈. 2011. 8. 9.
채련곡 : 허난설헌 가을 호수 맑고 푸른 물 구슬같아, 연꽃 핀 깊은 곳에 목란배 매였지 임을 만나 물 건너 연밥 따 던지고는, 행여 누가 보았을까 한 나절 부끄러워. ---------------- 시골우체국에서 한나절 부끄러웠고 이제는 한숨. 2011. 8. 4.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기 1. 후배활동가와 밥을 먹다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그 말을 지껄이는 나를 보며 조금 한심했다. 이 세상 누구보다 두려움을 겪고 싶지 않아하는 게 누군데, 하는 생각. 나는 두려움 속으로 '밀려'들어가지 결코 내 발로 밀고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밀려'들어가봤더니 그랬던 것 뿐이다. 세상에 '두려움'만큼 끔찍한 것이 없다. 나는 매일매일 두렵다. 그 두려움이 지겨울 정도다. 정말이지, 두려운 건 두려운 거다. 2. 해결되지 않는 몇 가지 일이 있다. 짝사랑과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 소설쓰기와 무작정 가면 되는 건지 싶은 운동.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까봐 두렵다 여기면서도 막상 들여다보면 막연한 두려움만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오래전에 .. 2011. 7. 29.
김소진-함정임 헌책방을 전전하며 책을 사모으던 휴학생 시절. 솔출판사에서 나온 김소진의 소설집 두 권을 구하고는 이게 왠 횡재냐고 박수치며 아르바이트를 갔었던 기억이 있다. '눈사람 속 검은 항아리'을 통해서 만났던 그의 소설들이 내게 소설쓰기에 대한 다른 감회를 던져주었던터라 더욱 반가웠다. 딱 이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손 끝에 문장들이 덕지덕지 붙어 쏟아내기 바쁜 내 수준에는 아직 먼 길처럼 보이지만. 아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좋은 작품들을 더 만날 수 있었을텐데. 그의 아내가 함정임 이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함정임의 소설은 김소진과는 정말 달랐기 때문이다. 은 아직도 인상깊은 작품 중 하나. 아, 어줍잖게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함정임이 남편인 김소진을 추억하는 글을 보았기 때문이고 내 .. 2011. 7. 24.
가라앉다 1. 그 목소리를 듣고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다. 줄곧 생각하다가 갑자기 들려와서 체한듯 눈물을 쏟아냈다. 반복되는 마음의 파도, 멀미가 끝이 없다. 2. 나에게 그래도 된다고 누가 그랬을까? 칼을 든 것은 당신이고 상처를 내는 것은 우리다. 서로 모른채로 칼부림을 하고 있다. 내가 더 아프다. 시간 속으로 기억이 사라지길 바란다. 질기다, 이 마음. 3. 가라앉고 싶다. 깊이, 아무도 모르게. 2011. 7. 12.
쓰고싶다 1. 하얀 연습장을 몇 분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써보겠다고 펴들었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왜 쓰는가. 이 질문만이 머리에 뱅글뱅글 돌았다. 그 질문에 나는 삶으로 대답해 왔다고, 매년 소설을 쓰고 내면서 그 답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 시간에도 나는 왜 쓰느냐고 나에게 묻고 있다. 내가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와 함께 숨쉬는 인물들이 있다. 아직 형태가 구체적이지 않은 이들은 머릿속을 뛰어다니며 이야기줄을 이어간다. 어느 때는 내 손을 잡아끄는 것 같다가도, 내가 막상 손을 잡으면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진다. 그 질문, 내가 왜 써야되?, 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들은 사라진다. 미칠 노릇이다. 2. 집에 도착하면 스탠드를 켜고 소설책을 펴든다. 활자들.. 2011. 7. 10.
복원 노트북을 함부로 쓰던 편이었는데, 드디어 문제가 생겼다. 이런저런 자료들을 백업해두고 복원솔루션을 돌렸다. 모든 데이터는 2007년 6월 11일로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도록. 참 간단하다. 삶도 노트북처럼, 어느 때의 기억을 저장해두었다가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원된 이후의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겠지만 적어도 돌아간 그 순간부터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있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단 한 번, 돌아갈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어느 때로 가고 싶냐고. 여러가지 순간들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할 것 같다. 더 나은 기억은 없다. 더 나은 순간은 없다. 모든 순간들이 다 평범했고, 같은 크.. 2011. 6. 22.
달빛에 묻다 그렇게도 빛나던 달빛이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아프다. 외롭거나 그리운 마음이 아니라 텅 비어가는 빛의 공간들이 허전해 아프다. 나는 결국 달에 갈 수 없었고,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다. 누구도 해 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빛이라도 내 속에 머무는 그 순간 붉게 물든 내 마음을, 그토록 찾고 싶던 따뜻한 한 줄기 빛을 나는 바라고 바랬다. 아무 대답도 없이 아름답게 뜬 달을 본다. 변한 건 없다. 마음에 빛의 흉터가 하나 남아 나를 보고있을뿐. 2011. 6. 18.
병원 병원에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걸까? 뿌옇게 흐린 서울시내가 눈에 보인다. 바로 건너편인 대학로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해보인다. 이곳과는 상관없는 분주함이다. 나도 그 사이를 걸어본 적이 있지만, 오늘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어깨에 돌덩이를 메고 있는 기분이다. 인생이 참 고단하다. 2011.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