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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134

빌라 아말리아 읽는 내내 꽤 곤혹스러웠다. 이걸 더 읽어나가야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없이 정체되어 있는 안 이덴의 삶이 와 닿지 않았던 것은, 지금 내 삶의 어떤 부분과 어긋나서 였을까? 조각조각난 문단들 사이에 내가 이해하지 못할 구멍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도, 의미도 조각조각 이었다. “그녀는 지아 아말리아의 집을, 테라스를 만(灣)을, 바다를 열정적으로, 강박적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모든 사랑에는 매혹하는 무엇이 있다." 아말리아의 집은 그녀에게 '보루'같은 것이길 바랬을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보루는 없었다. 한없이 떠도는 먼지처럼 그녀는 어디에든 묻어 살고 싶었지만 지나친 집착으로 불안을 만들어냈다. 그런 삶은 또 다른 형태의 불안 - 아끼던 이들의.. 2012. 6. 8.
흑산 꽤 오랫동안 읽었다. 보다 더 느슨하다. 그래서 처음엔 고전을 했다. 단락단락 떨어지니 이야기가 이어지는 감이 없고 인물은 왠지 흑산의 흑자에 묻혀 버릴 듯 어둡고 잔인한 운명들이다. 천주교에 연루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의 삶과 죽음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들을 둘러싼 마부 마노리, 하급관리인 박차돌, 노비와 어부는 그 시대의 가장 낮은 자들이 보여주는 운명과 삶은 그야말로 어둡고 잔인하다.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오동희의 기도문과 특히 소나무에 세금을 매겨 힘들게 하자 어린 소나무 뿌리를 보는대로 뽑아내는 장팔수의 이야기는 얼음칼처럼 가슴을 차갑게 찌른다. 정약전과 황사영의 다른 선택 또한 인상.. 2012. 3. 21.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다른 문화권의 소설은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상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그랬다. 지명이나 공간이 낯설어 차라리 책에 지도나 사진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프리카의 술집 를 중심으로 주인공 '깨진 술잔'의 이야기와 술집을 드나드는 인생의 이야기가 거칠 것 없는 문장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하지만 '거칠 것 없는 문장'의 느낌을 번역자가 잘 살렸다는 점, 중간중간 작가의 독서력을 알게 하는 소설들의 등장, '지적인 마스터베이션'에 대한 이야기는 읽어볼만 했다. 몹시 따라 써보고 싶은 전개방식이기도 하다. 아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방식이라면 그렇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시선은 여성을 성적대상으로만 딱 고정시켜보고 원망의 대상으로만 등장.. 2011. 12. 4.
1Q84 작년 요르단 여행길에 오른 첫 날, 공항에서 티켓팅을 하는데 한 남자아이가 이 책을 들고 있었다. 내 또래였던 것 같은데 꽤나 심각하게 읽고 있었다. 만약 그 아이와 같은 비행기를 탔더라면 그 책이 어떤지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한 첫 기억은 그렇다. 작년에 선물받은 1권, 올해 선물받은 2권을 11월 들어 읽기 시작했고 오늘로 3권까지 읽어나갔다. 라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덴고, 아오마메, 후카에리 등 주인공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긴장감 넘치게, 아슬아슬하게 전개된다. 이야기들이 독자를 제대로 끌고가고 있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중간중간 넘쳐나는 작가의 감수성에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다.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본다면 '역시 하루키'라는 말을.. 2011. 11. 19.
이슬람정육점 다 컸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성장소설이다. 서른 두살에 읽는 성장소설, 눈물 한 바가지. 아니다. 더 커야겠다. 아직도 나는 받고 싶은 것이 많다. 특히나 위로가. 충고가 아니라 정말 위로가 필요한 때다. 하산아저씨처럼 의미있는 말을 해주는 어른이 필요했고, 나에게도 상처가 아직 많다는 것을 알아주는 상처투성이의 누군가들이 필요했고, 안아줄 안나아주머니가 아직 나는 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지나칠 수 있는 원인모를 상처에 기인한 주인공의 외로움과 무관심의 시선은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을 하나로 묶어낸다. 전도사와 이맘, 터키인과 그리스인, 대머리 군인과 맹랑한 녀석 모두 다 그렇다. 상처받은 사람들, 위로받고 싶은 사.. 2011. 10. 31.
내 무덤, 푸르고 최승자의 시는 결기 서린 듯한 단어들 때문에 보는 내내 무겁다. 한 손에 창을 들어 자기에게 겨누고, 다른 한 손으로 시를 쓰는 듯 하다. 불끈불끈 터지는 된소리의 단어, 결이 곧은 행과 행. 슬픈 비장함이어야만 비로소 시가 되는 것처럼 단어들이 꼿꼿하다. 대학교 때, 그녀의 라는 시집을 집어들었다가 홱 던져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안 그래도 인생이 팍팍한데, 이 여자까지 왜 이러나 싶을까, 라고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문학이 내 도피가 되기를 바랬고, 초라한 내 생활과 삶을 빛내주기를 바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어야 한다. 그녀의 그 팍팍한 언어가 곧 내 삶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의 시 에서처럼, 고독이 창처럼 나를 찌르러 올 때 나는 무슨 방패를 집어.. 2011. 10. 31.
에콜로지카 정치적 생태주의라는 낯선 말을 접했다. 퇴로의 길을 걷고 있는 자본주의를 넘어서 어떤 방향으로 우리 삶과 사회를 바꿀 수 있냐는 질문에 앙드레 고르는 그 낯선 단어를 제시한다. 탈성장은 살아남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그의 말처럼 기후변화는 이제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고, 생존하기 위해 더 이상 성장만을 부르짖을 수 없다. 지금과는 다른 경제, 다른 생활방식, 다른 문명의 필요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 이가 많지 않다. 그저 멈춰야 한다는 질문과 그래도 아직 괜찮다는 낙관론 사이에서 물음표만을 던질 뿐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노동자들이 생산과 소비자로서 분리된 것으로부터 시작해 생산자로서 자기가 생산할 양, .. 2011. 10. 13.
금각사 오늘 아침, 금각사의 마지막 장을 다 읽고야 말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내 머릿속은 텅 빈 듯하다. 첫 장을 열고, 버릇대로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다가 결국 연필을 던져버렸다. 줄을 그어야 할 문장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지 그 맛이 느껴졌다. 후루룩 스토리만 읽어나가는 소설이 절대로 아니다. 저 바락스럽게 생긴 얼굴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이 새겨졌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이 작품을 몇 번이고 읽었다고 하는데, 그럴만도 하다. 그리고 그의 문장도 미시마의 문장을 닮아있다. 고르고 섬세하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문장 이상을 아직 모르겠다. 솔직히 작가가 숨겨놓은 연결고리도 발견하지 못한채 문장만 만지고 끝에 와 버린 기분이라서, 뭐라고 더 쓸 말.. 2011. 8. 13.
열외인종잔혹사 강물에 발목까지 담근 기분이랄까. 강물로 확 뛰어든 것이 아니라 발목까지만.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뭔가 아쉽지만 어쨌든 물에 발을 넣었으니 시원하긴 하다. 이야기들이 퍼즐처럼 한 곳으로 모여드는 것이 재미있다. 서술자의 조롱하는 듯한 차가운 문체는 모두 뼈가 있다. 재미있게 말하는 이야기꾼이다. 삼성역 코엑스몰에 양머리들이 출몰하고, 네 명의 주인공들이 그곳에 운명인지 필연인지 모를 사연들로 모이게 된다. 네 명의 주인공들을 작가는 이름 붙이길 '열외인종'이라 했다. 네 명의 주인공은 지독하게도 이기적이고, 끝까지 이기적인 인물들이었다. 사람들이 양머리들에게 희생되는 순간에도 윤마리아는 양머리두목의 정체가 '론'본부장인지가 중요했고, 장영달은 자기가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본능을 포기하지 않는 .. 2011.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