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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134

가재미 이 조금 수런수런했다면, 가재미는 깊은 수면 아래를 걷는 듯 읽히는 시들이 많았다. 소재가 만들어주는 이야기 소리는 많이 줄어들었고, 문장이 만들어 내는 잔잔한 울림이 인상깊다. 읽다가 감탄한 시는 . 저 하늘에 누가 젖은 파래를 널어놓았나 파래를 덮고 자는 바닷가 아이의 꿈같이 별이 하나 둘 쪽잠 들러 나의 하늘에 온다 - 문태준 시, 파래를 하늘에 넌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전에 느껴지는 감각이 있다. 바닷가 아이의 꿈과 파래 속에서 별. 머릿 속에 찬 바닷물이 차 오르는 것처럼, 이성보다 앞선 감각의 소리. 내 상상력과 문태준 시의 상상력이 만나는 순간. 시의 상상력은 한계점 없이 날아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소설을 쓰다보면, 형식을 파괴하거나 초현실적인 소재가 아닌 이상은 틀 안에서 상.. 2011. 2. 8.
맨발 문태준의 이 시집에는 '뒤란'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 에도 어머니와 뒤란, 에도 뒤란이 등장한다. 뒤란은 여성과 관련이 있고, 아무도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찾아가는 이는 존재하지만, 그 곳에는 애초에 어떤 사람도 없다. 다만 대나무나 바람이 존재할 뿐이다. 어떤 구조의 '뒤'쪽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찾아가면 보이는 과거의 어떤 기억, 외로움의 앞모습, 공허한 공간으로서의 뒤란. 하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고, 찾아가는 뒤란. 그의 시는 뒤란 같은 것일지도. 꽤 오래 읽었다. 시의 맛이 자간과 자간사이, 행간과 행간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 숨겨진 끈을 하나하나 풀며 가는데 있긴 하지만, 뭐랄까 모르는 단어 하나도 없는데 끈의 끝을 찾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아, 가재미도 읽어야 하는데 걱정가득. 애달.. 2011. 1. 31.
나사의 회전 나사가 조여드는 긴장감, 그 긴장감은 끝 또는 상쾌함 일 수 있다. 나사의 회전을 읽고 난 후의 긴장감도 그렇게 양분된 표정으로 다가왔다. 나사의 회전은 영국의 한 저택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던 젊은 여성이 유령을 목격하면서 그 집에 유령이 나온다고 확신하고, 자신이 돌보는 순진무구하고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아이들을 유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결말은 비극.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작품은 오직 가정교사의 시선으로 말할 뿐, 객관적으로 판단해 볼 수 있는 다른 시선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작품을 아쉽게도, 결정적이게도 했다. 단 하나의 시선. 한 여성의 심리를 히스테릭하게 표현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것이 .. 2011. 1. 11.
모방범 모방범을 읽는 저녁은 몹시 두렵고 추웠다. 그녀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아주 구체적이고, 섬짓했다. 미혼여성 연쇄살인범을 쫓는 경찰과, 살인범들-피스,히로미- 그리고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얽혀 거대한 그물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본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캐릭터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히로미의 삐뚤어진 영웅욕이 만들어지는 동기와 그것이 살인으로 발전되는 과정, 그리고 그 허망함까지 잘 짜여져 있어서,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3권에 가서야 등장하는 피스의 실체 또한 히로미의 일부였음이 드러나면서 캐릭터 간의 유기적 일치감을 맛보게 한다. 그건 어떤 의미로는 꽤 짜릿하기도 했다. 단지 그가 결국 잡혀서는 절대 아닌, 뭔가 씁쓸하면서도 짜릿한 쾌감. .. 2011. 1. 10.
골든슬럼버 2010년의 가는 끝을 잡고 꼼짝않고 읽었던 작품. 읽는 내내 감탄사를 내뱉게 했다. 잘 짜여진 추리소설을 보는 기분, 오랫만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상황설정, 반전까지,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소설이었다. 기본줄거리는 총리살해범 용의자로 지목된 아오야기 마사하루,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경찰과 그저 도망쳐야 하는 아오야기와 그 주변인물들을 통해 통제당하는 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 가진 음모의 다양한 형태들도 제시되기도 한다. 골든슬럼버의 장점은 골든슬럼버라는 작품이 최고의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전제 속으로 독자를 유입시키는 능력이다. 세상 모든 이가 주인공인 아오야기를 속이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무기가 임을 끊임없이 말한다.그리고 독자가 그것을 납득하도록 만든다. 정말이지.. 2011. 1. 3.
불편해도 괜찮아 는 김두식 교수의 이전 책들처럼 어렵지 않고, 흥미롭다. 영화와 연결되어 다양한 인권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처음 화두를 장악해버린 '지랄총량의 법칙'부터 시작해 제노사이드의 이야기로의 마무리까지 재미를 놓치지 않아서 좋다. 우리가 주변에서 놓치던 것들을, 특히 기독교인의 관점으로 말해준 것은 나에게 더욱 더 좋았다. 동성애에 대한 부분, 특히 그의 합리적이고 사람우선의 시선이 느껴지는, 그들을 만나본 적 있느냐는 질문은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기독교인의 관점 그 자체가 한계가 되어 더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참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더 세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을텐데.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이었던 것은 바로 풍부한 이야기였다.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와 영화.. 2010. 12. 28.
청춘메뉴얼제작소 정말 오랫만에 읽어본 나름의 자기개발서 였다. 프로레슬러에, 사업에, 책까지 낸 김남훈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면야, 그냥 지나쳤을. 책을 보고나서 내가 중얼거린 말은 'Cool'. 책을 사서 내가 먼저 펼쳐본 곳은 는 부분이었다. 이 사람이 마초인가 아닌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부분을 읽고 떠올린 것은 얼마전 읽었던 전우익 선생의 글이었다. 착함을 지키기 위한 독함을 키우라는 그의 말이 남훈님의 독한 년과 교차했다.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착한 여자이길 바라며, 그 착함을 위해 독함을 포기하는 현실에 여성파이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지지말라고 말하는 그의 태도에 일단 백점을 주고 읽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거였다. 남들에게 맨날 파이팅을 외칠 것이 아.. 2010. 12. 27.
이병률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겨울이 되면 춥고, 이불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피어나는 외로움에 떨다가 가만히 시집을 꺼내든다. 그렇게, 이불 속에서 읽은 시가 얼마나 될까. 트위터에서 읽은 이병률씨의 문장에 끌려 시집을 샀다. 늘 그렇듯, 시집은 사두기만 하고 책장위에 올려둔다. 그리고 외로움이 동할 때, 너 거기 있었냐는듯 아는체를 하며 꺼내 읽는다. 학교 다닐 때, 아니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배울 때부터 시는 내게 상처였다. 나는 문을 두드려도, 시의 언어는 내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만약 시가 쉬운 언어였다면, 나는 소설이 아닌 시를 선택했을 것이다. 대학때는 시와 관련된 수업은 되도록 듣지 않았다. 나는 상처받기 싫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시의 언어는 내 안에서 저절로 피어났던 것 같다. 그것은 때로는 소설 속에, 내 .. 2010. 12. 8.
좀비들 단 4시간만에 반을 훌쩍 넘길만한 흡입력을 가졌다. 읽는자의 입장에서는 꽤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시종일관 어둠을 떠올리는 을씨년스러운 상상력, 좀비를 소재로 끌어낸 잃은 것에 대한 애틋함(?)이 잘 쓰여진 소설이었다. 그래, 잘 쓴 소설 정도로 평가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쓰는 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이만저만이 아닌 소설. 김중혁의 소설은 초반 몰입력이 상당한데, 뒤로 갈 수록 에구 이게뭐야, 이런, 앞에 비해 약한 뒷마무리가 늘 걸렸다. 펭귄뉴스도 그랬고. 뭔가 뒤쪽에서 주는 임팩트가 약하다. 스토리가 약한 것도 아니고, 구성에 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가진 내공 때문일까. 뒤를 빡치는 힘이, 아쉽다. 그래서 쓰는 자의 입장에서 읽는 독서는 힘들다. 뒤를 빡치는 힘, 나.. 2010. 1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