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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꽃 같은 시절

by bravoey 2011. 7. 26.

재개발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젊은 부부 영희와 철수, 불법쇄석공장이 들어선 순양군 진평리 마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누구보다도 나에게는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아마 그래서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술술 읽어갔던 것일까. 봉산면 골프장 투쟁 때 만났던 어르신들 생각이 부쩍 많이 났다.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시고 홍성군청까지 쉬다걷다를 반복하며 웃고 먹고 소리치시던 모습이 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가 헐 말'을 하셔야 한다고 외치는! 그 모습을 아직도 강원도에서 또 내가 사는 충남도에서 아직도 보고 있다. 아마 내가 열심히 일을 하지 않은 탓인가보다. 골프장이든, 석산이든, 레미콘 공장이든, 있는 자들은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 삶의 터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살아온 주민들의 우애 마저 깨뜨린다. 아직도 그렇다. 힘이 세지도 못하고 돈이 많지도 않은 가난한 사람들의 힘은 '답답함'일지도 모른다(68p)는 영희의 말이 정말 와닿는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사정없이 재미있다. 할머니들의 재간넘치는 말투들은 공선옥이어서 가능한, 어렵지 않고, 인간미 넘치는 말들이다. 그래서 답답함이 조금 가신다. 그리고 가볍지 않은 소설의 결말에 마음 털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꽃 같은 시절이라는 제목에 기대 본다. 자기 터를 자본의 힘에, 강자에 의해 빼앗기는 누군가들을 위해 나는 아직 힘을 내줄 수 있는 위치니까, 내가 힘을 내자고. 그러자고. 그리고 나도 이런 고백을 나중에 해 보자. 지금이 가장 '꽃시절' 이라고.

한번도 험하지 않은 세월이 없었지만 그 험한 세월 중에 그래도 지금이 가장 꽃시절이라며 함박꽃같이 웃는 사람들하고 같이 있다고, 그러니 나는 얼마나 복받은 사람이냐고.
- 22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