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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인권11

차베스의 삶과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 베네수엘라와 차베스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임승수씨를 통해 들어본 시간. 군인출신 독재자라는 시선도 있지만 혁명을 위해 투쟁한 진정성과 제헌의회 구성을 통해 정치혁신을,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통해 빈민들의 삶을 돌보고자 했던 점, 공동체 평의회, 협동조합의 활성화(노동자 협동조합이 대부분, 26만개 추산) 등은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입니다."라는 그의 말을 뒷받침하는 정책들이었다. 주민들 ...스스로가 주체성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기울인 많은 노력과 모험은 인상깊었다. 차베스에 대한 이야기는 더 자세히 공부해야 하겠지만, 그를 잘 표현한 것 같은 그의 말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매일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며 내 마음 속에는 한 .. 2013. 6. 21.
쌍용자동차투쟁, 그 후 '그 후'라는 말은 끝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물과 전기가 끊긴 곳에 고립된 사람들의 마음과 테이저건과 최루액, 폭력에 갇힌 인간에게 정신적 상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긴 싸움 끝에 나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정신적 공황과 피해에 대해 우리는 또 입을 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인간에 대한 예의, 이 말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뛰어보자 폴짝] 두 번 다시 쓰고 싶지 않은 일기 돌아온 아빠, 돌이킬 수 없는 상처 한낱 “야, 빨갱이 새끼야!” “뭐? 내가 왜 빨갱이 새끼야!” “니네 아빠가 빨갱이니깐 너는 빨갱이 새끼지!” 5일 전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던 같은 반 은주가 교실 문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자기네 아빠는 해고도 안 당했고, 공.. 2009. 8. 26.
베이징올림픽 섬뜩하다. 이런 세상이 변할 수 있을까? 중국,70년대 후반까지 티베트人 최소 120만명 대학살 !!! 티베트는 면적이 250만 ㎦이며, 수도는 라사(Lhasa)다. 인구는 넓은 면적에 비해 600만에 불과하다. 종교는 불교, 언어는 티베트어를 사용하고 있다. 평균 해발고도는 무려 3,962m 로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를 자연의 나라라는 뜻의 포(Poe)라고 부르거나 산의 눈이 여름에도 녹지 않고 쌓여 있어 눈 덮인 나라라는 뜻의 캉첸이라고 부른다. 티베트인들의 대부분은 농경과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현재 정치/종교적 지도자는 인도 H.P주 다람살라에 망명중인 14대 달라이 라마로서 그는 1959년 인도로 망명한 이후 지금까지 망명정부를 대표하고 있다. 티베트는 중국에 종속당하기 전까지 어엿한 독.. 2008. 3. 26.
삼성책임촉구 텔미동영상 2008. 1. 11.
열정씨의 운수 좋은 날 2월의 하늘은 낮게 가라앉아 어깨를 짓누른다. 바람 끝이 차고 습한 걸 보니 눈이라도 한바탕 몰아칠 기세다. “오늘 날씨가 좋아야 하는데 말이에요.”열정 씨는 시동을 켜면서 뒷좌석에 앉은 방씨 아저씨를 향해 구원의 대답이라도 얻으려는 듯 말을 건넨다. “오늘 또 데모가? 일하는 날이면서?” “일 하면서도 하는 거죠. 한미 FTA도 큰 일이구요. 오늘은 국방부 앞에서 농성도 있어요. 에스피아이(SPI)라구 한대요. 미국하고 한국 정부하고 지들끼리 모여서 평택에 미군기지 만들고 6천억원이 넘는 세금 거저 주고 받는 그런 회의를 한대서 항의집회를 해요. 아저씨도 그놈들 하는 짓 잘 아시잖아요. 저야 점심시간에 잠깐 들르는 거지만 하루 종일 집회해야 하는데, 눈발이라도 날리면 거기 계신 분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2007. 6. 22.
국가폭력에 불복종하라 - 박래군 [기고] 2006년 5월 우리가 확인한 ‘국가폭력’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2006년 5월 4일과 5일, 난 그 ‘전쟁’의 한 복판에 있었다. 그 전쟁은 병력과 장비 면에서 월등히 우월한 우위를 점한 한 쪽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인한 파괴로 끝났다. 전의경 110개 중대, 1만 1천명. 군 병력이 2천명이 넘는다고 했고, 용역으로 동원된 이들만도 7백 명이 넘는다고 하는 이들과 맞서서 싸워야 했던 이들은 겨우 1천 명이었다. 황새울 들판과 대추분교를 두고 접전을 벌였지만 거의 맨몸이었던 평택 지킴이들은 5월 4일의 전투에서 처절하게 당해야 했다.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대추분교에서 3백 명 가까운 이들의 저항이 끝나고, 대추분교 지붕 위의 신부님들이 내려온 뒤 투쟁의 거점이자 상징이었던 대추분교는 포클레인 삽.. 2006. 5. 14.
대추리에 평화를, 릴레이 선언!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약한 자가 될 지언정, 비겁한 자는 되지 않아야 한다. 2006. 5. 6.
거짓말쟁이 윤광웅 국방장관 "평택 투입 군과 주민 사이에 직접 충돌 없을 것" 윤광웅 국방 "군은 부지조성 준비 및 지원만 수행할 것" 2006-05-03 오후 6:25:38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4일 오후 5시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 군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주민들과 직접적인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며 부지조성을 위한 준비 및 지원 임무만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질서유지는 경찰의 몫…주민제압 위한 군병력 투입 없다" 윤 국방부 장관은 최근 7일까지로 기한을 설정한 평택 대추리 대추분교에 대한 행정대집행과 관련해 '주민을 제압하기 위해 군 병력을 투입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특히 우리 군이 마치 강제력을 동원할 것 같은 식으로.. 2006. 5. 5.
"역사는 대추리를 '5월 광주'처럼 기억할 것입니다" "역사는 대추리를 '5월 광주'처럼 기억할 것입니다" [긴급기고] "대추리 주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2006-05-04 오후 7:43:21 내가 평택 대추리에 처음 갔던 것은 작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사흘 동안 대추리에 있었는데, 그때 조선례 할머니를 찾아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의 아들 민병대 할아버지도 방에 같이 있었다. 두 분 다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조 할머니는 연세가 88이고, 아들 민 할아버지는 68이었다. 오늘 평택 대추리, 도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언론 보도가 굉장하다. 3개 방송사 아침뉴스의 첫 기사로 나올 뿐 아니라, 인터넷 언론들은 밤새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600일 넘게 주민들의 촛불집회장으로 쓰였던 비닐하우스가 1분 만에 철거되었고, 대추초등학교 운동장.. 2006.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