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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열외인종잔혹사

by bravoey 2011. 8. 9.

강물에 발목까지 담근 기분이랄까. 강물로 확 뛰어든 것이 아니라 발목까지만.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뭔가 아쉽지만 어쨌든 물에 발을 넣었으니 시원하긴 하다. 이야기들이 퍼즐처럼 한 곳으로 모여드는 것이 재미있다. 서술자의 조롱하는 듯한 차가운 문체는 모두 뼈가 있다. 재미있게 말하는 이야기꾼이다.

삼성역 코엑스몰에 양머리들이 출몰하고, 네 명의 주인공들이 그곳에 운명인지 필연인지 모를 사연들로 모이게 된다. 네 명의 주인공들을 작가는 이름 붙이길 '열외인종'이라 했다. 네 명의 주인공은 지독하게도 이기적이고, 끝까지 이기적인 인물들이었다. 사람들이 양머리들에게 희생되는 순간에도 윤마리아는 양머리두목의 정체가 '론'본부장인지가 중요했고, 장영달은 자기가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본능을 포기하지 않는 공격성을 보였고, 김중혁은 자기의 '클라이막스'를 위해 코엑스몰 조정실에 뛰어들었고, 기무는 게임포인트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이 작품의 재미는 그런 주인공들을 통해 투사되는 대중의 이기적인 모습이었다. 대중은 '무관심'이 대표적이다. 기무가 총을 들고 설쳐도, 노숙자들이 떼거지로 잡혀가도 사람들은 관심없다. 이기적인 대중의 모습은 장영달이 살아남기 위해 두 젊은이와 죽을 각오로 싸운 뒤에, 한 40대 남성이 '늙은 당신 살자고 젊은 사람을 죽이냐'는 말을 하는 대목에서 드러난다. 대중을 위해 한 사람은, 특히 늙은 사람은 희생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대중의 이기심. 소름끼쳤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다는 듯 여긴다는 것은 끔찍한 이기심이다.


'십헤드 카니발'은 그런 대중들의 모습을 경계하는 상징적인 축제(?)다. 이미 양머리로 변한 자들의 자비에 의해 벌어진 축제. 그 속을 여전히 헤집고 있는 것은 예비 양머리들의 이기심이다. '십헤드 카니발'이 언론에 한 줄도 소개되지 않고 공중분해된 것도 무관심 내지는 무엇인가를 숨기려는 권력있는 이기심들의 짓이겠지.


이봐.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말이야. 우린 선각자들이야. 당신들은 아직 스스로도, 아니면 상대를 통해서도 우리 모두가 양머리로 변해가는 것을 모르거나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상태에 빠져 있는 거고. 그래서 우린 결국 참다못해 당신들도 이제 곧 양머리로 변할테니까 그 때를 대비해 어떤 준비라도 해 놓으라는 자각과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마련한 거란 말이야. 알아듣겠어? - 266p


목 뒤를 살짝 만져봤다. 혹시 털이 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아, 이런 소설을 보면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이야기꾼의 소질이 나에겐 없는 것 같아서다.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 그것이 지금 내게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