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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광휘의 속삭임

by bravoey 2008. 11. 3.


학교 다닐 때 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소설쓰기가 좋았던 내게 시는 너무 절제된 언어들의 집합이었고, 뭔가 표출되지 못한 억압된 단어가 모여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를 접하게 되도록 만든 물꼬는 아마 장정일이었던 것 같다. 소설도 쓰고 희곡도 쓰는 그의 시는 솔직히 절제의 미는 없었지만, 정확하게 던지는 공처럼 마음에 저장되었다. 그 이후로는 장석남, 아, 정말 장석남 시는 좋다. 그 이후는 이시영, 그 이후 고은, 그 이후 문태준, 그 이후 바로 정현종이다.
김혜순의 시도 좋아하지만 왠지 여성의 시는, 마치 가슴 앞에 칼을 들이대고 보는 것처럼 날카로와서 쉽게 다가서지 못하겠다.
시를 마주할 때 나는 그 때 나의 마음과 시의 마음이 닿을 때 좋다고 느낀다. 이번 정현종 시집에도 나의 마음에 닿는 여러 시들이 있었지만 그 중 꽃시간1, 바람의 그림자, 빨간 담쟁이덩쿨, 장소에 대하여 등을 여러번 읽었다. 

 모든 생생한 것들, 마음이 동트는 그곳. 잡히지 않던 것을 잡으려 했던 내 마음에 이 단어가 들어왔을 때, 내가 잡으려 했던 것이 결코 생생한 것들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 생각 속에 있던, 내가 바라던 대상을 잡으려고 달려들었고 마음을 쏟았던 것 같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숨결을 제대로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말이다. 내 마음은 지금 지평선 너머로 숨어버린 태양처럼 가라앉아있지만, 언젠가, 다시 그 마음이 생생하게 동트리라고 믿는다.
 설레임으로 붉게 물든 얼굴과 새벽녘 싱싱한 보라색꽃의 모습이 내내 떠올라 마음도 쓸쓸하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