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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

인간에 대한 예의

by bravoey 2009. 8. 7.
세상에서 제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을 뽑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타인의 고통'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신문과 뉴스를 통해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고 있다.

화를 내기는 쉽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진정 분노하기는 쉽지 않다.
분노는 상황을 직시했을 때, 그 상황의 연결고리와 내막을 알았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현상을 보고 화를 내는 것과, 한 사건의 내막을 알고 분노하는 것은 다르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공권력이 투입되었을 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산참사'를 떠올렸으리라 생각한다. 
컨테이너 박스가 올라가고, 최루액이 공기중으로 흩어진다. 검게 보이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마치 용산을 보는 듯, 똑같이 그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갑자기 시간이 거꾸로, 다섯 달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공권력 투입현장을 보면서 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내내 생각했다.
자본주의, 노동자, 경제.. 이런 단어를 떠나서, 그래 인권이라는 단어마저 떠나서
사람에게 이렇게 예의없이 구는 경우가 도대체 어디있느냐고,
부인들, 아들들, 딸들의 해맑은 얼굴을 두고 그 극한의 상황까지 오르던 그 사람들을
이익이라는 단어 앞에 막 대해도 된다는 생각을, 도대체 어떻게 가질 수 있냐고.
그들을 짐승취급하며 전기와 물을 끊고, 마지막에 먹이를 던지듯 협상을-그것도 평화적 협상 운운하며
얼마나 예의가 넘치는 인간들이기에, 평화적 협상을 운운하는가.
가장 기본도 없는 인간들이, 어떻게 그들과 '평화'를 말할 수 있는가.

예의는 자기를 낮추는 데서 시작한다.
자기를 한 껏 높이고 그들을 낮춰서 뭉개버리는 그들의 오만한 태도가 아주 역겹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경찰과 용역을 풀어 마음껏 폭력을 휘두르고도
너네 경제, 우리 아니면 살려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태도인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쓰레기 같은 말들로 옷 입혀주고 싶다.
자국민이 목숨을 잃었으면 애도하는 것이 마땅히 사람이 갖추어야 할 예의다.
자국민이 생활을 포기하고 뭔가를 위해 싸우고 있다면 듣고, 해결하려는 태도가 예의다.
마주하지 않으려는, 다른 사람을 부려서 해결하려는 얄팍한 마음새로
예의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다.
자기 먹을 것 말고 아무 관심없는 것은 바로 '짐승'이다. 짐승은 제 입만 배부르면 끝이다.
저들의 순리대로 살다 죽기만 하면 땡이다. 짐승에게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아직도 냉동고에 있는 그 분들과, 상복을 벗지 못한 가족들의 사진을 보면
협상이라고 하긴 했지만 무급휴직이라는 굴레, 정리해고라는 굴레 벗지 못할 그 분들을 생각하면
그냥 여기서 안타까워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기나긴 싸움 중인 세상의 그 많은 '분'들을 위해
내가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생각한다.
조금의 후원, 조금의 안타까움이 아니라

잊지 않고 기억할 것.
그건 아주 작은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