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워드씨가 서울을 방문하셨다.
  그 그림자가 참 짙다.

당신들의 골프장, 우리들의 서원산


3월 15일 아침, 충남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노인정 앞에 주민들이 모여 있다. 점심상이 소박하게 차려져 있고, 국수를 나르는 주민의 손길이 바쁘다. 밖에서 보면 동네잔치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잔칫집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전쟁을 치르기 전 단단히 준비를 하는 군인의 모습이라면 그럴 것이다. 마치 싸울 준비를 하는 사람들처럼 묵묵하게 오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 먼 뒤편으로 서원산의 모습이 보인다. 서원산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응원이라도 하듯이.

오늘 마을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서원산에 18홀짜리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계획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골프장 건설계획이 있기 전에 봉림리 마을은 대개의 농촌마을이 그러하듯,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봉림리 마을에서 서원산은 마을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림리 마을에 오랫동안 살아온 할머니 한 분은 서원산 계곡에서 가재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재는 1급수의 오염되지 않은 계곡이나 냇가에서만 사는 갑각류이다.) 그리고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칠월칠석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원산이 중요한 이유는 서원산 계곡수가 마을 주민들의 주요한 식수원이기 때문이다.

골프장이 세워질 장소는 주민들의 식수원인 서원산 계곡과 얼마 멀지 않은 곳이다. 만약 이곳에 골프장이 세워진다면 주민들은 골프장에서 흘러나온 농약으로 오염된 물을 마셔야 할 판이다. 또한 마을 주민들은 골프장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격에 되어 계곡에서 바람을 따라, 물줄기를 따라 타고 내려오는 농약 때문에 생기는 환경피해를 감당해야 한다. 결국은 오랫동안 터 잡아온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골프장이 골프를 즐기는 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지어진다면, 주민에게 골프장 건설은 생존의 문제를 위협당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봉림리 일대의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골프장으로 인해 봉산면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요즘처럼 먹거리, 특히 농산물의 안전성과 품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런 때에 골프장이 들어선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누가 먹겠는가? 다들 농사짓지 않겠다고 떠나가는 마당에, 미처 정든 땅을 버리지 못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 바로 골프장 건설이다.


예산군은 그동안 골프장 건설 추진으로 물의를 빚어왔다. 2003년 광시면에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지역주민의 거센 반발을 샀고, 결국 지역주민들과 대전충남녹색연합의 소송으로 해당부지인 군유림이 지역주민들 소유로 밝혀져, 고등법원에서 승소하고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최근 예산군과 군수의 녹지관련 행정이 계속 문제가 된 바 있다.


봉산면 서원산 일대 임야에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추진하고 있는 사업자는 경남기업이다. 경남기업의 골프장 건립계획은 작년 말 제정되어 고신된 ‘골프장 중점 사전환경성검토 항목 및 방법등에 관한 규정’에 저촉되어 사업추진이 현재 가능하지 않다. 지형 및 경관 항목에서 골프장 사업계획부지 중 경사도 25°이상인 지역의 면적이 30% 이상이 포함되지 않도록 정하고 있는데, 그 기준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자인 경남기업은 골프장 건설을 포기하지 않고 추가 토지 매입 및 다른 방법을 찾고 있고 예산군 또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다시 승인할 계획이다.



이런 이유로 서원산 일대의 주민들은 머리에 ‘결사반대’라는 띠를 두르고 군청을 향해 뛰쳐나왔다. 군청 앞에 모여 앉은 주민들은 온 힘을 다해 골프장 건설반대를 외쳤다. 군청 울타리 안에는 관계공무원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생존을 위해 달려온 주민들을 쳐다보고만 있다.

지역주민들의 발언이 이어지고,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함성은 높아져 갔다. 예산군봉산골프장백지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들은 군청으로 들어가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오늘은 마침 국민고충위원회에서 예산지역 순회면담을 하는 날이었다. 공동대책위는 군수와의 면담을 갖고, 주민이 원하지 않는 골프장 건설을 하지 말것을 요구했다. 이에 군수는 주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골프장 건설은 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했다. 이 날 국민고충위원회에서도 이 사안에 관한 면담을 갖고, 주민들의 입장을 들었다.

골프장을 건설하지 않겠다고 군수의 말이 군민에게 한 약속인 만큼 꼭 지켜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봉산면 주민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군청으로 출발하기 전, 나이가 지긋한 주민 한 분이 마을 뒷산의 흰 바위를 가르치시며 저기에 골프장을 짓는다고 했다. 알려준 곳을 직접 찾아가보니, 상수도 보호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봉산면 주민들의 이름으로 하나, 예산군의 이름으로 하나 세워져 있었다. 표지판 위로 올라가는 길이 더 있어 올라보았다. 언덕 위로 올라서자 주민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서원산 계곡물이 한 눈에 보였다. 깊고 평온해 보이는 계곡물 위로 평화로운 바람의 숨소리가 들렸다. 계곡물은 그 존재 자체가 생명이었다.


서원산 계곡물의 생명은 산을 중심으로 모여 사는 주민들의 삶이요, 생명이다. 그렇다면 그 생명의 터 위에 골프장을 짓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과연 골프장을 누가 이용할지 모르지만, 서원산 계곡물의 생명을 알고 있는 '우리'는 분명히 아니다. 누구를 위한 골프장을 짓는 것인가? 누구인지 모를 당신들의 골프장과 우리들의 서원산 중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인가?

빼앗긴 새만금에도 봄은 온다

3월 19일, 새만금 자락에서 큰 함성소리가 하늘을 쳤다.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수 많은 깃발들이 새만금 자락에 세워졌다. 하지만 그 함성소리는 모인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늘 울려퍼지고 있었을, 새만금의 뭇생명들의 함성소리였다. 사람은 늘 자기 기준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듣지 못했기에 갯벌을 죽은 땅으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전국에서 온 새만금을 사랑하는 사람들▲


집회 장소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새만금 갯벌의 모습.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은 그 자체만으로 놀라움이었다. 물이 빠져나간 갯벌은 그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짙은 속살에서 나는 생명의 향기가 분명히 코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갯벌을 막고 있는 거대한 돌무더기들도 보였다. 돌무더기들은 갯벌을 따라 선을 그어놓고 있었다. 인간들처럼 선 긋기 좋아하는 족속들도 없을 것이다. 선을 긋고, 스스로 주인이 된다. 처음부터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던 것들에 대해 선을 그으면 자기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밴드 실버라이닝의 공연으로 집회는 시작되었다. 새만금을 위해 앞에서 뛰는 사람들의 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응원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누구보다 절박한 마음으로 그 앞에 나온 것은, 새만금에 터를 잡고 살던 어민들이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하게 만든 갯벌공사를, 눈물로 이야기하는 그들 앞에서 사람들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그 눈물은, 새만금의 생명들이 흘리는 눈물이었다.

새만금은 처음부터 인간의 소유가 아니었다. 새만금은 새만금에 살고 있는 생명들의 것이다. 인간은 그들에게서 새만금을 빼앗은 것이다. 새만금의 생명들은 그들의 터를 빼앗기고, 슬퍼하고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이어지는 새만금 방조제▲


새만금은 전북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 일대의 갯벌로 1991년부터 간척사업이 시작되었다. 개발면적은 40,100ha로 여의도의 140배 규모이다. 이 곳의 28,300ha는 토지로 조성되고 11,800ha는 담수호로 조성이 될 예정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문제제기는 1996년 시화호 오염문제로 본격화 되었고, 이후 민관공동조사를 거치는 등 약 10여년 간의 진통 끝에 대법원이 4년 7개월을 끌어 온 새만금 소송에서 전부 주민 3천여명과 환경단체가 낸 새만금 간척사업 계획 취고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하여 농림부와 전라북도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이 경제성이 없고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을 인정할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반면 대체 농지의 필요성, 쌀 수입 개방등으로 인한 식량 위기 등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새만금 간척 사업을 타당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법관 중 김영란, 박시환 판사는 원심을 파기하는 반대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후손에게 남겨주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전제한 뒤 “당초 농지로 조성하려고 했던 사업 목적을 변경하려고 한 정황이 있기 때문에 이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농지 목적으로 간척사업을 진행하다’고 주장해온 농림부 등의 주장에 의문을 표시했다.



▲안타깝게 갯벌을 바라보는 정복희 회원▲


새만금 갯벌을 결국 사라지게 만들 결정적인 대법원 판결로 인해 물막이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판결 이후 전북도에서는 새만금 간척지에 골프장 등 레저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말이 나왔고,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의 삼보일배설을 언론에 퍼트리는 등 환경단체에 대한 여론조작까지 하고 있다.
물막이 공사가 진행되면서 해양생태계는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서해안 일대의 갯벌매립으로 패류의 생산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백합류와 가무락은 계통판매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서식처가 간석지가 아닌 해수에 잠겨있는 조하대인 피조개를 제외하고는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으며, 미끼생물류에서 한때 상당한 수출량을 보였던 갯지렁이 등은 100% 소멸될 것이라고 보여진다. 단순히 전북지역 수산물 생산뿐만 아니라 서해안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한다.



▲SOS 새만금▲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해 전라북도 지역의 갯벌은 90%이상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과연 농지로 사용될지 의문이지만, 농지로 쓰일 때와 비교했을 때, 3배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갯벌이 지니고 있다. 갯벌의 수산물 생산과 생물들의 서식지, 오염정화, 재해방지, 레크레이션 등의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제 물이 들어오고 나갈 공간이 2.7㎞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집회가 이어지는 동안 갯벌에 물은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집회가 끝날 때 쯤에는 바로 코 앞까지 물이 차 있었다. 그들은 아직 살아있다.

지금은 잠시 빼앗겼을 뿐, 새만금에 봄은 올 것이다. 새만금 뭇생명들은 빼앗긴 자신들의 터를 반드시 찾으려고 할 것이고, 온 생명들이 힘을 합쳐 인간이 쌓아올린 헛된 바벨탑을 무너뜨릴 것이다.
인간은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뭇생명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당신들은 내일 당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성경 야고보서 4장 14절 인용)”

[서울신문]전쟁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홉스나 루소와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은 개인들의 자유의 일부를 군주에게 양보하면서 전쟁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유지하고 있는 것보다는 리바이어던에게 조세를 제공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계약론의 본질인 셈이다. 이들보다 100년 후에 등장한 애덤 스미스와 다시 100년 후인 데이비드 리카도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거래인 무역이 전쟁을 없애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인 것 같다. 포도주의 대명사인 보르도를 영국이 만드는 바보 같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면화로 더 좋은 섬유를 만들어서 교환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것이 국부론의 주장이고, 이 당시의 경제학자들은 국가 간에 무역을 하게 되면 전쟁이 줄게 될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했던 것 같다.

16∼17세기에 자본주의를 지지한 학자들의 말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어쨌든 시장 사회와 자유무역을 추진하면 결과적으로 세상의 전쟁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가장 꽃피었던 20세기에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이 벌어졌다는 점을 상기하면 좀 이상해 보기이기는 하지만, 유럽사에서 전쟁일수가 가장 적었던 시기가 사실은 20세기였다는 점을 환기할 때 아주 틀리다고는 하기 어렵다. 실제로 유럽에서의 자본주의는 15세기에 세계를 지배하던 해적들과의 전쟁과정에서 승리한 시스템이기는 하다. 한 때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했던 국가인 스페인의 재경장관이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훨씬 빠르게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발언들을 근거로 유럽 사학자들은 때때로 15세기의 해적들에 대해서 스페인의 여왕이 비밀리에 지원을 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의 함대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쳐부순 사건을 ‘신사’들의 자본주의가 드디어 해적들의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비로소 자신의 길을 세운 순간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돌아보면 인류의 역사는 번영이라는 한 가지의 목표와 평화라는 또다른 목표를 일종의 이중 플롯처럼 구성하면서 지금까지 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한테 만약 잘 사는 사회와 재미있는 사회 그리고 전쟁 없는 사회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전쟁 없는 사회를 고를 것 같다. 좀 가난하거나 좀 재미 없더라도 전쟁이 없다면 그런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작은 기여라도 하면서 살고 싶다. 냉전이 끝난 지금 과연 전 세계에서 전쟁이 앞으로 20년 내에 발발하지 않을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해보자. 누구나 스위스를 고를 것이고, 그 다음에는 프랑스와 독일 같은 곳을 고를 것이고, 미국이나 중국 혹은 일본이 앞으로 20년 후에도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고를 사람은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로마클럽 보고서의 연구팀장인 도넬라 메도 여사는 2년 전에 타계하면서 20년 후에 전 세계적인 자원전쟁이 발발할 위험성이 높다고 경고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과연 어떨까?

현재와 같이 세계 10위의 경제규모에서 외국 자원의 의존도를 계속 늘려나가는 상황인 만큼 우리도 해외주둔군을 가지지 않을 도리는 없다. 한국 또한 수비형인 이지스함만이 아니라 훨씬 더 적극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원양작전 능력을 갖춘 항공모함이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시장인 중국과 일본이 이웃한 동북아 경제의 팽창은 자원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20년 후에도 이 땅에 전쟁이 없을까? 가장 간단한 시뮬레이션 모델로도 빠르면 10년, 길면 20년 후에 한국도 사활을 건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우리한테 평화의 조건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이 한반도에 20년 후에도 전쟁이 없게 할 수 있는 평화의 조건이 달성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무척 궁금한데, 대한민국 학계나 그 어느 곳에도 여기에 대한 답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내 눈에는 한국은 열심히 전쟁으로 달려가는 것만 같아 보인다.


지금도 우리나라 군인들이 이라크에 가 있다. 이란에서 사태가 나면 아랍어로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라는 뜻을 가진 짜이툰 부대가 바로 투입될 것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하여간 현재로서는 평화재건 부대로 이미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난 이라크에 우리나라 군인들이 머물고 있다.


아주 개인적으로는 이 이라크 파병이 나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이제 몇 년이 지났지만 나는 이 파병의 충격에서 잘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아직도 이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를 못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는 중이다. 나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아마 나의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치자면 광주사태가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그 다음이 이라크 파병일 것 같다. 광주사태 때에는 중학교 1학년이라서 뭐가 뭔지 잘 몰라서 충격의 여파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라크 파병은 내가 어른이 된 다음의 일이라서 그 충격에서 아직도 잘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일종의 traumatism이라고 한다면 이라크 파병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광주사태는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독재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생각보다 “왜?”를 이해하기가 쉬웠다. 사람들 말대로 군바리들이 사람 목숨을 목숨같이 생각하지 않고 공무원이나 학자들이나 전부 군인들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협조하던 시절이니까 이 시기의 정책이나 사회적 결정에는 아무런 합리성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속 편한 것 같다. 물론 경제사나 경제적 접근으로 더 들어가면 그렇게 그냥 독재시절이라고 모든 것을 지워버릴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무식한 전두환 시절”이라고 아주 쉽게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이라크 파병이 진행되던 순간은 가끔 좌파정부라고 오해를 받는 현재의 열린우리당 세력이 집권한 시기이고, 국회 내에서도 파병을 막지 못할 정도로 민주주의 세력이 없던 시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민주주의라는 담론만으로 상황을 풀어나가기에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 등 골아픈 것들이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라크 파병 같은 경우에는 민주주의 정부이든 아니든 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였다. 물론 보수주의 정당이 아니라 더 급진적인 정부가 국회를 장악했으면 나았을 것이라는 테제를 제기할 수야 있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장기적으로 그런 급진 세력이 오래 국회를 장악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또 다른 스탈린주의의 병폐가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이라크 파병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국익’이라는 좌표를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고, 이 국익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조작’ 혹은 호도가 가능한 별로 학문적이지 않은 주장들 위에 서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라크에 머물던 윤정은씨가 돌아와서 우리에게 알려준 대로 파병을 하게 되면 이라크와 아랍권에서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서 실제 이렇게 대규모의 파병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 경제인의 입국이 어려워지므로 실제 무역효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지적 그리고 실제 미국 건설회사들이 재건 공사를 독점할 것이므로 파병을 해도 실제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지적들이 있기는 했다.


지금에 와서는 아주 장기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국익을 계산하면 나아질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이라크 파병의 경제적 이익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병된 장병들이 돌아와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는 대단히 약하다.


원래 한 나라의 지표라고 하는 것에는 국익이 있고 가치지향 - 보통은 국시라고 부르는 - 이라는 것이 있다. 이런 복잡한 것들이 충돌하거나 갈등을 벌이면서 한 나라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데, 이라크 파병이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보여줄 수 없는 국익”이라는 지표로 많은 국민들이 상당히 추상적인 생각으로 파병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동맹국과의 외교문제라거나 혹은 지역에서의 헤게모니 같은 조금은 입체적이고 복잡한 이유를 대어서 파병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파병을 이끌어가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기본적인 논의는 국익이었다.


이 사건이 나에게 충격적인 이유는... 앞으로 20년 내에 전쟁을 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국가에 여러 가지로 경제적 이익을 주는 사건이 여러 번 벌어질 것인데, 지금의 상황에 대한 변환없이 그냥 역사의 흐름이 진행된다면 우리나라는 파병이 아니라 실제 전쟁을 벌이게 될 것 같다. 원래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고 인종과 종교의 이유로 벌어지는 일부의 국지전이 아닌 진짜 선진국의 전쟁은 대개는 경제적 이익 때문에 벌어지게 된다.


20년 내에 우리나라는 전쟁을 하게 될까? 이라크 파병의 국민들 태도가 변하지 않고 있다면 100% 우리나라는 전쟁을 하게 될 것 같다.


마흔에 가까워지도록 우리나라가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라크 파병의 결정과정을 보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경제적 이유로 전쟁을 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차적 의미의 민주주의만으로는 우리나라가 달려가는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전혀 다른 방식의 생각과 개념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내가 처음 하게 된 사건이 바로 이 이라크 파병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다른 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셈이다.


황우석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황우석에 열광하는 힘은 분명히 국익을 위해서는 파병해도 좋다고 하는 것과 같은 힘 같아 보인다.


20년 후에 남지나해를 돌아오는 우리나라의 유조선을 중국의 군함이 길을 막아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어떨까? 혹은 시베리아에서 동해를 돌아오는 가스송유관을 일본이 막아서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정부의 희망대로라면 3만불 국가가 되어있는 시점이고, 현재의 에너지 탄성치라면 지금보다 3배 이상의 TOE(석유환산톤)를 소비하고 있는 세계 3위 내의 에너지 대소비 국가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니면 태평양 심해유전에서의 석유채굴을 베트남이 막아선다면?


지금의 국민들이 그대로 20년 후의 국민들이라고 한다면 볼 것도 없이 전쟁이다.


만약에 재수 없게 그 20년 후의 어느 해가 지금처럼 소득분배의 지수인 지니계수 같은 것들이 안 좋아지고, 실업률이 높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의 외형을 국회와 지방에서 실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조건에서는 우리나라는 무조건 전쟁을 하게 된다. 인터넷 토론이 아무리 발달하고, 국내 소비시장이 아무리 커지고, 또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20년 후의 모습은 전쟁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 것이 나에게는 이라크 파병이라는 작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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