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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사랑

by bravoey 2011. 5. 12.

산도르 마라이를 접한 것은 어느 작가의 트윗에서 였다. 남겨지는 문장들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서 품절된 책을 백방으로 구해 얻었다. 솔직히, 절대로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박상륭씨의 소설 이후로 이렇게 공들여 읽은 소설은 또 처음인 것 같다. 
산도르 마라이의 사랑은 베니스의 감옥에서 막 빠져나온 카사노바 '쟈코모'가 볼자노에 망명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한편 지금의 아내 '프란체스카'를 놓고 한때 쟈코모와 팽팽하게 대립했던 늙은 백작 '파름므'는 그를 찾아와, 아직까지도 쟈코모를 잊지 못하는 자신의 젊은 아내 '프란체스카'를 납치해 하룻밤 지내달라고 한다. 스쳐갈 사랑으로 인한 마음을 돌이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백작 자신과 가정에 충실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소설은 파름므 백작이 자코모를 찾아와 프란체스카를 하룻밤 안에 사랑하고 상처주라는 이야기부터 집중되기 시작한다. 산도르 마라이의 폭주하는 문장력도 여기부터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다채로운 언어와 표현들, 정말 번역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넓은 바다같은 문장들이 펼쳐지고 나는 거기 풍덩 빠져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프란체스카가 자코모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문장들도 마찬가지. 짜여진 스토리나 이야기가 아닌 문장 하나만으로도 사랑이라는 주제를 풀어낼 수도 있구나 싶은 소설. 산도르 마라이는 무엇에 집착하며 글을 썼을까 궁금했다.
책을 덮으며 나는 '이성의 칼'을 생각한다. 이성의 칼로 다가오는 감정을 내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앓아내본 사람만이 이성의 칼을 쓸 줄 안다. 그 칼로 심지어 자기 감정조차 도려낸다. 앓아봤기 때문이다. 절절한 감정의 파도가 삶에 주는 상처와 외로움, 기쁨을.

그러나 그대, 이제 그 칼을 거두시길 바란다. 결말은 부딪치면서 만들어져 가니까.
가면을 벗고, 이제 당신의 길을 열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