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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자들/촌철살인칼럼

[시네마레터] 사실은 단하나 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by bravoey 2007. 4. 13.
[시네마레터] 사실은 단하나 뿐이었다. 내가 도망쳤다.
[이동진 닷컴 2007-03-12 19:39]

(저는 ‘이동진의 시네마레터’라는 칼럼을 10년 넘게 써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상황에서, 예전에 썼던 수백편의 시네마레터들 중 독자들의 호응이 가장 컸던 글 다섯 편을 이곳에 올립니다. 새로 쓰게 될 시네마레터 칼럼은 앞으로 계속 이곳에 실릴 예정입니다.)

중세 독일의 전설에 이런 게 있지요. 독일 바덴 지방의 어느 젊은 백작이 덴마크를 여행하다가 아름다운 성의 정원에서 오라뮨데 백작 부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그는 그 성에 머물면서,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살아가던 오라뮨데 백작 부인과 깊은 사랑을 나눕니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을 때 그는 “네 개의 눈이 있는 한 당신을 바덴으로 데려갈 수 없다오. 네 개의 눈이 사라지면 반드시 당신을 데리러 오겠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네 개의 눈이란 자신의 부모를 뜻하는 말이었지요.

집으로 돌아간 그는 반대할 줄 알았던 부모로부터 수개월 뒤 의외로 쉽게 허락을 받자 기쁨에 들떠 덴마크로 갑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오라뮨데 백작 부인이 아이들을 살해한 뒤 죄의식에 몸져 누운 채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백작 부인은 ‘네 개의 눈’이 새로운 사랑에 방해가 되는 자신의 아이들인 걸로 오해해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거지요. 자초지종을 알게 된 독일 백작은 말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칩니다.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백작 부인의 그 처참한 사랑으로부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