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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ist169

선물-4 가게의 이름은 ‘희망’이었다. 나는 간판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내가 본 술집간판 중에 가장 유치하고 어처구니없는 이름이었다. 선불금 800에 나는 ‘희망’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 희망에는 마담을 제외한 세 명이 일하고 있었다. 각자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둘째언니, 셋째언니, 막내언니라고 부르게 했다. 나이는 내가 제일 어렸다. 저녁 7시에 문을 열고 가게를 정리하는 뒤치다꺼리는 내가 했다. 저녁시간에는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두 배로 더 빨리 행동해야 했다. 며칠 동안 다른 언니들은 딱히 나에게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서먹한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이름이 뭐니?” 둘째언니가 내 이름을 물었다. 셋째와 막내언니는 각자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나와 둘째언니.. 2006. 4. 24.
선물-3 내 입에서는 욕이 쉽게 나왔다. 그렇게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속이 참을 수 없이 답답했다. 처음엔 속으로 욕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욕은 점차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한 욕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다방에서 진 빚을 갚기 위해 단란주점에 300만원을 받고 자리를 옮겼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주방이모는 친정엄마처럼 말했다. 거기서는 더 악착같이 해야 할 거라고. 그리고는 아무 말도 않고 내 손을 잡아주었다. 주방이모의 손은 늘 그렇듯 차가웠지만 왠지 마음은 따뜻해지게 했다. 주방이모의 말처럼, 정말 그랬다. 개인시간을 나가서 돈을 못 받을 때에 나는 악착같이 돈을 받아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받을 돈이 적어졌다. 사실은 빚이 늘어나는 것이었지만. 가끔 맞기도 했다.. 2006. 4. 24.
선물-2 친구는 티켓다방에서 한 달에 삼백만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그 친구가 평소에 돈을 잘 쓰기도 했고, 한 달에 삼백이라는 말도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숙식까지 제공해준다고 하니,나로서는 더 이상 생각해 볼 여지도 없었다. 소개를 받아 한 다방에 취직하게 되었다. 일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는 다방 안에서 서빙을 보거나 일을 도와주었고, 가끔 배달도 나갔다. 아직 처음이라고 마담언니와 여러 언니들은 나를 잘 챙겨주었다. 그런데 가끔 그런 친절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아니라 그 언니들이 아주 어색해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친절을 받아본 일이 없는 사람이 친절한 흉내를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주방이모와 한 방을 썼는데, 주방이모는 그래도 내게 친절하지 않을 편에 속해서 오히려 .. 2006. 4. 24.
선물-1 * 외침 소식지 도담다담에 연재한 소설 선물 사람이 살아가는데 세상이 주는 선물은 여러 가지이다. 때로는 입이 찢어질만큼 큰 웃음을 선물로 주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가끔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게 주로 주어진 선물은 선물처럼 보이는 것들이었다. 일찌감치 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아르바이트이고 여자아이라서 월급은 조금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일했다. 조금이지만 돈을 벌게 되면서 내게는 남들과 다른 특권처럼 ‘카드’가 주어졌다. 그 작고 네모난 플라스틱 카드는 내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것들을 간단하게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사는 게 더 나아졌다는 기분을 처음으로 느꼈다. 주변 친구들은 모두 카드를 가지고 있었고, 항상 돈이 없던 나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마다 그들의 카드 신세.. 2006. 4. 24.
녹색순례 함께 갈래요?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이하는 녹색순례는 지리산으로 갑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종주능선’으로 기억되는 고속도로처럼 뚫린 지리산 주능선이 아니라 2006 녹색순례에서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길, 생태문화역사순례길로 색다른 지리산을 만나려고 합니다.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은 개발로 멍든 자연, 사람이 떠나버린 산간마을, 그리고 치열했던 역사를 어머니의 넓은 품으로 말없이 끌어안고 있습니다. 어머니 산은 꿈을 꿉니다. 반달곰이 뛰어노는 꿈을, 야생식물이 살아나는 복원현장을, 농촌마을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와 함께 자라는 배움터를. 이제 그 꿈은 꿈이 아니라 우리의 발걸음 속에서 희망으로 피어납니다. 백두대간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리산에서 자연과 내가, 너와 내가, 생명과 생명이 ‘공존’해야 하는.. 2006. 4. 9.
당신들의 골프장, 우리들의 서원산 당신들의 골프장, 우리들의 서원산 3월 15일 아침, 충남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노인정 앞에 주민들이 모여 있다. 점심상이 소박하게 차려져 있고, 국수를 나르는 주민의 손길이 바쁘다. 밖에서 보면 동네잔치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잔칫집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전쟁을 치르기 전 단단히 준비를 하는 군인의 모습이라면 그럴 것이다. 마치 싸울 준비를 하는 사람들처럼 묵묵하게 오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 먼 뒤편으로 서원산의 모습이 보인다. 서원산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응원이라도 하듯이.오늘 마을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서원산에 18홀짜리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계획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골프장 건설계획이 있기 전에 봉림리 마을은 대개의 농촌마을이 그러하듯,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 2006. 4. 5.
빼앗긴 새만금에도 봄은 온다 빼앗긴 새만금에도 봄은 온다3월 19일, 새만금 자락에서 큰 함성소리가 하늘을 쳤다.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수 많은 깃발들이 새만금 자락에 세워졌다. 하지만 그 함성소리는 모인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늘 울려퍼지고 있었을, 새만금의 뭇생명들의 함성소리였다. 사람은 늘 자기 기준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듣지 못했기에 갯벌을 죽은 땅으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전국에서 온 새만금을 사랑하는 사람들▲ 집회 장소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새만금 갯벌의 모습.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은 그 자체만으로 놀라움이었다. 물이 빠져나간 갯벌은 그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 2006.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