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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134

미스터 모노레일 김중혁 은근히 좋아한다. , 그리고 이 책까지. 비록 상받은 작품들은 하나도 안 읽어봤지만, 김중혁은 '진지하지 않아서' 좋다. 가볍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벼운 것과 진지한 것은 다르니까. 모노라는 주인공이 발명(?)한 '미스터 모노레일'이라는 게임과 '볼교'를 이야기거리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정말 공이 '통~'하고 튀듯 흘러간다. 복잡할 것도 없이 한참 질주하는 이야기 속을 함께 달리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하루만에 읽었으니 속도감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한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멈칫하게 만드는 말들이 등장한다. 그것도 뭐, 사실 별로 진지한 말은 아니다. 그냥 이런 분위기에 무슨 말이야 싶은 말이다. 게임이란 말야, 어떤 일을 누가 더 잘하는가를 겨루는 게 아니라 제한된 환경.. 2011. 8. 8.
내 변방은 어디 갔나 시인생활 50여년. 시집 여럿. 이보다 더 멋진 프로필이 어디 있을까 싶은, 고은 시인이기에 가능한 프로필로 열어본 그의 시집. 여름휴가가 시작된 첫 날 밤, 조용한 산 속에서 그가 새긴 언어의 소리를 새겨 들었다. , , , , , 등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는 가만히 외워질 정도로 위로가 되는 시였다. 노시인이 말하는 '그대의 반생애 수고 많았네'라는 말은 심장을 툭 치고도 남을 말이었다. 시를 읽을 때 가장 짜릿한 순간은 내 삶과 맞닿는 문장을 만날 때다. '말할 줄 모르는 아이야 / 네 언어 이전의 그 미지의 은유 어서 찾아라'(다시 은유로 중), ' 하루를 살아야 한다 / 가장 작은 너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 / 그러나 바위의 슬픔으로 / 풀의 기쁨으로 / 하루하루를 노래해야 한다'(그래도 다시 .. 2011. 8. 8.
꽃 같은 시절 재개발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젊은 부부 영희와 철수, 불법쇄석공장이 들어선 순양군 진평리 마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누구보다도 나에게는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아마 그래서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술술 읽어갔던 것일까. 봉산면 골프장 투쟁 때 만났던 어르신들 생각이 부쩍 많이 났다.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시고 홍성군청까지 쉬다걷다를 반복하며 웃고 먹고 소리치시던 모습이 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가 헐 말'을 하셔야 한다고 외치는! 그 모습을 아직도 강원도에서 또 내가 사는 충남도에서 아직도 보고 있다. 아마 내가 열심히 일을 하지 않은 탓인가보다. 골프장이든, 석산이든, 레미콘 공장이든, 있는 자들은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 삶의 터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살아온 주민들의 우애 마저 .. 2011. 7. 26.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아프리카 소설을 몇 개 읽어볼 심산으로 둘러보다가 처음 만난 작품. 아프리카 소설이 어떤 식으로 쓰여지는지 접해본 바가 없고, 번역된 문체라는 사실 작품을 대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는 아프리카 탈식민지 시대의 상황을 오콩코 일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나이지리아 이보족이라는 처음 보는 종족들, 그 종족이 가졌던 문화들을 소설을 통해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작품의 본론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꽤 뒤에 가서야 나타나는데, 영국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선교'라는 이름으로 침입하면서 고유의 문화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교회와 법을 요구하는 부분에서는 분노가 치밀 정도였다. 서양의 방식은 인간이든 자연이든 빠르게 대상화하고 정복하려 했던 것 같다. 문화를 정복하고, 파괴하는 방법은 식민지를 다루는 강국들이 자.. 2011. 7. 22.
철수사용설명서 세장쯤 읽었을 때였을 것이다. 제길, 잘 썼네. 이 말이 툭 튀어나왔다. 문체는 더 없이 간결하고 핵심적이다. 당연하다. 사용설명서에 형용사나 부사는 필요없다. 철수는 가장 보편적인 이름이자, 보편적인 인물로 설정되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려고 사용설명서를 수도 없이 구해 읽었다던데, 문장은 그 느낌을 잘 살려냈다. 철수에 대해 알아갈수록 슬퍼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그건 바로 아래의 문장을 접했을 때다. 가끔씩 철수는 사람들이 망가진 제품을 만나길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자신은 상대적으로 정상이 될 수도 있으니까 (58p) 철수의 행동이 우스꽝스러워 질 때마다 마음으로 안도하는 나 자신을 봤으니까. 그래, 철수 같은 사람 세상에 많지. 바보같이, .. 2011. 7. 22.
나를 보내지 마 처음 읽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단순히 클론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SF류를 기대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작품이다. 틀을 뒤집는다는 건 이런게 아닐까 싶었다. 작가는 뒷짐을 지고 장기기증을 목적으로 교육되는 해일셤의 아이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주인공(루스, 캐시, 토미)들은 소설에 등장하는 기증, 일반인, 장기 등의 단어가 없다면 평범한 아이들처럼 보인다. 지루하다싶게 소소한 주인공들의 이야기 저변에는 말해도 안되고, 베일에 싸인 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깔려있다. 그 불안함이 지루한 이야기들을 자꾸 읽어나가게 한다. 그래서, 그래서 얘들은 어떻게 되는거야?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랐을때, 장기기증을 하면서 인간들의 잔인함 등을 기대했을때, 작가는 기다렸다는듯이 클론들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 2011. 7. 13.
그로칼랭 라는 소설을 기억한다. 대학교 때, 아주 밝은 날, 도서관에서 공강시간에 읽었는데 결국 필사까지 했다. 강렬했다. 그 밝은 햇빛을 밝은 그대로 어둡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으로 두번째 만나는 그다. 조금 가벼워진 그는 에서 완벽한 문장을 보여준다. 정상인에게는 정상인이 아닌 '쿠쟁'과 오로지 쿠쟁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그로칼랭'은 둘 이며 다른 개체이지만 하나인 '가공의 인물 혹은 뱀'을 주인공으로, 주도적인 문장을 도구삼아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초대한다. 아주 적극적이다. 관조 따위는 없다. 쿠쟁의 말하기는 '자기 규정'을 포함한다. 주변에 모든 사람, 그로칼랭까지 오직 자기에 의해서만 규정되지만, 독자들은 쉽게 그것이 쿠쟁의 정의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인지도 사실.. 2011. 7. 5.
용의자 X의 헌신  올해 초 을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일본추리소설은 범행동기가 무척 단순하다. 복잡한 사건들을 다루다보니 동기에 더 깊은 의미를 두기는 어려웠던 걸까, 아니면 동기에 대한 의미는 독자에게 맡기는걸까. 개인적으로 '동기'에 대한 부분은 많이 아쉽니다. 이 소설도 안 어울리는 '순정'이 범행동기(?)여서 마지막에 피식 웃어버렸지만 플롯은 수학공식처럼 명료하고 깨끗해 괜찮았다. 일본추리소설이 사람을 잡아끄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런 단순한 동기와 깔끔한 플롯, 의외의 캐릭터와 단문이 강점인 것 같다. 긴 문장은 일단 흡입력이 떨어지니까. 캐릭터는 일본영화든, 소설이든 보여지는 강점 중의 강점.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발굴해내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순정적인 천재수학자라니. 옆집 여성의 순간의 이미.. 2011. 6. 28.
책을 읽는 방법 히라노 게이치로의 독서법에 관한 책이다. 슬로리딩이라는 말이 와 닿았고, 일본 작가 중에 은근 존경하는 그이기도 했다. 과 은 지금 읽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슬로리딩은 막연히 천천히 책을 읽는 방법은 아니다. 자세히 읽는다는 개념으로 이해가 됬는데, 핵심은 책을 성과내듯 읽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읽으라는 것이었다. 소설의 경우, 플롯만 허겁지겁 따라가는 읽기가 아니라 숨겨진 복선이나 인물의 행동 등을 유심히 살펴보고, 작가가 의도한 숨겨진 장치나 이야기를 밝혀내듯 읽자는 의미다. 뒷부분에는 구체적인 작품 내용을 예로 슬로리딩의 방법들을 제안하고 있다. 소설을 쓸 때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플롯이다. 이야기 전개가 나 자신에게 설득이 되도록 쓰는데 신경을 쓰다보니 인물은 정형화되고, 문장은.. 2011. 6. 4.